‘우주 탄생 규명’…강입자가속기 2년만에 재가동
○‘우주 탄생 규명’…강입자가속기 2년만에 재가동
기사입력 2015-04-06 20:45
“축하합니다. 이제 어려운 일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일요일인 5일 오전, 유럽입자물리연구소(세른·CERN) 소장인 롤프 호이어 박사가 중앙통제실에 모인 수천명의 연구원과
직원들 앞에서 대형강입자가속기(LHC)의 재가동을 선언했다고 <가디언> 등 외신들이 전했다. 우주 시원의 비밀을 밝히려는
인류의 탐색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세른은 홈페이지를 통해, 이날 오전 10시41분께 양성자 빔 1개가 가속기 궤도에 오른 데 이어 낮 12시27분께 두번째 양자
빔도 반대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2013년 초 성능 향상을 위해 가동을 중단한 지 2년여 만이다.
호이어 소장은 “빔이 2년 만에 입자가속기 전체 궤도를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건 환상적이다”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강입자가속기는 원자핵이나 미립자를 거의 빛의 속도로 충돌시킬 때 생기는 물리현상을 관찰하는 실험 장치다.
우주 탄생의 순간으로 알려진 ‘빅뱅’을 소규모로 재현해, 극고온 상태에서 찰나에 이뤄진 물질의 생성 과정을 직접 들여다
보려는 시도다. 세른은 이날 두 개의 양자 빔은 450기가전자볼트(GeV)로 발사됐으며, 앞으로 며칠 동안 시스템을
점검하면서 차츰 가속에너지를 높인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지대에 있는 세른의 입자가속기는 길이 27km, 지름 3m의 거대한 원형 터널 구조다. 지난 2012년
7월 충돌실험에서, 만물에 질량이 부여되는 과정을 설명해주는 ‘신의 입자’인 힉스 보손의 존재를 증명해 입자물리학의
신기원을 세웠다.
세른은 지난 2년 간 입자가속기 터널 안에서 빔의 방향을 조절하는 1만여개의 초전도 자석 연결망과 자석의 초저온
냉각장치 등의 성능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또 더 많은 양자 충돌을 유도하기 위한 신기술도 적용했다.
세른은 앞으로 강입자가속기 실험을 통해 더 많은 힉스입자의 발견, 암흑물질과 반물질의 존재 증명, 시공간 이상
고차원과 중력의 관계 규명 등을 기대하고 있다.
○더 강력해진 '빅뱅 머신'… 태초에 한발 더 다가서다
최종수정 2015-03-24 06:37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과학실험 장비’가 이번 주 재가동된다.
2013년 성능 향상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던 유럽원자핵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LHC)
얘기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가동 시기는 25일(현지시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LHC는 스위스 제네바 근처 지하 100m 깊이에 있다. 길이 27㎞의 원형 터널 속에서 두 개의 양성자 빔을 초전도 자석을
이용해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킨 뒤 정면 충돌시킨다.
이렇게 하면 우주의 탄생인 빅뱅 직후의 상황과 맞먹는 엄청난 충돌 에너지로 양성자가 깨져 더 작은 소립자들로 부서진다.
LHC가 일명 ‘빅뱅 머신’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CERN의 과학자들은 무엇 때문에 빅뱅 직후의 우주를 재현하려 애쓰는 걸까.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이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살아왔다.
우주 삼라만상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몇 개의 입자로 구성돼 있고,
이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이 있다는 ‘표준모형’이다.과학자들은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이 표준모형을 이루는 입자들을 모두 찾아냈다.
유일하게 찾지 못한 게 각각의 입자들이 질량을 갖는 원리를 설명해주는 힉스 입자였다.
과학자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표준모형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 조각’인 힉스 입자를 찾아 헤맸다.
2012년 그 힉스 입자의 ‘유력 후보’를 찾아낸 것이 바로 LHC였다.
앞서 이 입자의 존재를 예견한 피터 힉스와 프랑수아 앙글레르가 이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LHC
덕분이었다.

유럽핵물리연구소(CERN)의 엔지니어들이 대형강입자충돌기 를 정비하고 있다. [유럽핵물리연구소]
한데도 CERN의 과학자들은 지난 2년간 LHC를 더 강력하게 업그레이드했다.
2012년 힉스 입자 후보를 찾아냈을 당시 충돌 에너지는 8조 전자볼트(eV)였다. 이를 두 배 가까운 13조eV로 올렸다.
빅뱅이 일어나고 약 10억 분의 1초 뒤의 상황을 재현할 수 있는 수준이다. 빔의 강도도 이전보다 세 배 정도 높였다.
충돌에너지가 높으면 새로운 물리적 현상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빔의 강도가 높으면 입자들끼리 충돌 횟수가 많아진다.
이렇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2012년 발견한 입자가 표준모형이 예측한 ‘바로 그 힉스(the Higgs)’ 입자인지 좀 더 자세히
분석하는 것이다. 가령 표준모형을 확장한 이론을 근거로 일부 학자는 “힉스 입자가 여러 벌 존재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2년 발견한 입자가 그들 중 하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2년간 업그레이드돼 이번에 재가동되는
LHC(CERN은 ‘LHC 시즌2’라고 부른다)는 이전보다 약 열 배 이상 더 많은 힉스 입자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만큼 빨리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게 과학자들의 추측이다.
과학자들은 또 ‘LHC 시즌2’를 통해 기존 표준모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표준모형은 현재까지는 성공적인 이론으로 여겨지지만 자연의 원리를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우선 여러 힘 가운데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중력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 우주를 이루는 에너지의 25%는 아직도
그 정체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아 암흑물질이라고 불린다. 표준모형은 이 암흑물질도 설명하지 못한다.
힉스 입자의 존재 자체도 모순적이다.
힉스 입자는 양자역학적인 과정을 고려하면 엄청나게 큰 질량을 가져야만 한다.
하지만 LHC에서 측정한 값은 양성자 질량의 약 125배 정도로, 양자역학에 의한 추정치보다 최소 1경 배나 작다.
표준모형은 그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다.
‘시즌 2’를 시작하는 LHC가 이전보다 더 큰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표준모형을 무너뜨릴 새로운 현상을
발견할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재가동되는 LHC는 당분간 빔 라인을 따라 양성자를 돌리기만 한다.
본격적인 고에너지 충돌실험은 오는 5월, 데이터 분석은 6월 시작될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무엇을 발견하든 모두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만큼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점이다.
LHC는 인류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고 있다.
그만큼 인간 지성의 경계도 더 넓어질 것이다. 제네바에서 ‘뭔가 놀라운 발견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그로부터
새로운 과학혁명이 시작될 수도 있다.
◆힉스 입자=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
만들어지자마자 다른 입자로 쪼개지기 때문에 찾기 힘들다.
CERN의 과학자들은 LHC로 힉스 입자가 붕괴해 만들어지는 입자들을 검출해 역으로 이 입자의 존재를 확인했다.
◆전자볼트(eV)=전기를 띤 입자가 움직이며 하는 일의 크기.
1eV는 1개의 입자가 1V의 전압이 걸려 있는 전극 사이에서 가속될 때 에너지를 가리킨다.
힉스 발견한 가속기… 시즌2 가동 스타트
기사입력 2015-04-10 03:10

한국 연구진이 개발한 뮤온 입자 검출기. 가속기에서 양성자끼리 충돌한 뒤 생성되
“오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의 리듬에 맞춰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신의 입자’ 힉스를 발견하며 세계 과학계를 흥분시켰던 LHC가 5일(현지 시간) 450억 eV(전자볼트)의 양성자
빔을 쏘며 ‘시즌2’의 시작을 알렸다. LHC는 2013년 가동을 중단하고 2년간 보수작업을 진행해왔다.
롤프 호이어 CERN 소장은 “(힉스 발견 당시) 양성자들을 6.5조 eV로 충돌시켰는데, 서서히 에너지를 높여 올여름에는
13조 eV로 양성자끼리 충돌시킬 계획”이라면서 “빅뱅 직후를 재현해 암흑물질 등 우주의 비밀을 밝혀낼 것”이라고 밝혔다.
LHC의 시즌2에는 한국 연구진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뮤온 입자 검출기도 활약을 예고했다.
힉스는 양성자가 충돌할 때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존재했다가 4개의 뮤온 입자로 붕괴되기 때문에 뮤온 입자를 검출하면
힉스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최수용 한국-CMS 단장(고려대 물리학과 교수)은 “뮤온 입자 검출기의 성능을
향상시킨 뒤 장착을 끝냈다”면서 “앞으로 LHC가 암흑물질과 반물질 등을 찾아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에서 뮤온 입자 검출기의 성능을 확인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을 총괄한 고정환 성균관대 박사는 e메일 인터뷰에서
“현재 가속기와 검출기 등 LHC의 모든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운전을 하면서 최종 점검 중”이라면서 “이르면 6월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LHC가 본격 가동되면 양성자 빔은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기를 따라 초당 1만1125바퀴를 돌고, 이 과정에서
초당 6억 개의 입자를 생성한다. 이때 이동한 양성자 빔의 거리는 100억 km 정도로 지구와 해왕성 사이를 왕복하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