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핵홀 2016. 5. 20. 08:05

강남 부인들이 왕십리 원룸촌(村)에 몰리는 이유는

12일 오전 왕십리역 6번 출구 근처 원룸촌(村).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사는 김인택∙황순자 부부는 왕십리역 일대 공인중개업소를 돌며 건물 시세와 월 임대 수익, 필요한 투자 비용 등을 알아보고 있었다.

김씨는 “왕십리 건물에 투자한 주변 지인의 소개로 이곳을 찾게 됐다”며 “자녀들도 다 분가해 큰 집에 둘이 살 필요가 없어, 노후도 대비할 겸 집을 팔아 꾸준히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원룸 건물을 살까 싶어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이진희 디자이너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왕십리 일대 원룸 건물들이 새로운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

왕십리 원룸촌 일대는 교통이 편리하고 대학가 주변 주택 임차 수요가 많으면서도 강남권 건물보다 시세가 낮기 때문에 임대수익을 올리기에 제격이라 판단한 강남 큰손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왕십리 원룸촌 주변 공인중개업소엔 원룸 건물을 사려는 강남 투자자들이 줄을 섰다. 인근 J공인만 하더라도 원룸 건물 매입 대기자만 30명이 넘는다. J공인 관계자는 “대부분 강남 아줌마들”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강남 사람들이 보통 20억~30억원짜리 건물을 구해 달라고 하는데, 이들 중엔 100억원 이상을 가진 자산가들도 꽤 있다”며 “이미 대기자들이 줄을 선지라, 부동산에 나오기도 전에 알음알음 거래가 이뤄져 소리 없이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주민 유모 씨도 왕십리 원룸 건물을 알아보고 있는 경우다. 유씨는 지난 2011년 왕십리 원룸촌에 있는 5층짜리 원룸 건물 한 채를 이미 매입한 왕십리 원룸촌 건물주다.

유씨는 “오래전에 저렴한 가격에 매입해 임대를 놓아 재미를 많이 봤다”며 “하나 더 사둘까 하는데 매물이 워낙 귀해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왕십리는 지하철 2·5호선과 분당선, 경의 중앙선 등 4개의 노선이 지나가 대중교통 여건이 뛰어난 편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면 왕십리에서 강남이나 명동, 여의도, 광화문, 서울역 등 서울 내 주요 업무지구에 지하철로 30분 이내에 닿을 수 있어 직장인들의 원룸 수요가 꾸준하다. 또, 주변에 한양대학교가 있어 대학생들의 원룸 수요도 끊이지 않는 이른바 ‘샌드위치 입지’라 공실 우려가 크지 않다는 점도 강점이다.

왕십리역 주변 원룸촌 위치.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현지 공인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이 지역 원룸은 보통 전용면적 14~23㎡(4.5~7평)의 경우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 관리비 5만원이 일반적이다. 공실이 없다는 가정하에 원룸 건물 하나당 방이 20~30개 정도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월 1300만~1950만원 정도의 임대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왕십리 주변 공인중개소 관계자들은 지난해부터 강남 투자자들이 왕십리 원룸 건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거래가 많아졌다고 했다. 강남 사람들의 투자 대상은 주로 준공된 원룸 건물이지만, 빈 땅이나 단독 주택을 매입한 뒤 건물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

마장동 M공인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거래가 많을 때는 한 달에 5건 이상 원룸 빌딩이 거래되기도 했다”며 “요즘에도 하루에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원룸 건물을 찾는다”고 말했다.

원룸 건물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매물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졌다. 간혹 매물이 나오면 바로바로 거래가 이뤄지고, 소위 ‘알짜’ 건물인 경우에는 확실한 매수자가 나올 때까지 공인중개업소가 매물 정보를 감춰두기 때문이다.

왕십리 원룸촌 일대 모습. /이승주 기자

김혜경 왕십리토박이공인 대표는 “찾는 사람은 많아도 매물이 씨가 말랐다”며 “건물주를 설득해 매물로 만드는데 적어도 3~4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부 매물이 있더라도 공인중개사 입장에서 ‘이 사람이 구매하겠다’라는 확신이 없으면 매물을 보여주지 않아 실제로 매물이 있어도 없다고 얘기하는 중개업소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룸 가격도 많이 뛰었다. 원룸 건물은 보통 대지면적을 기준으로 거래되는데, 지난해만 해도 3.3㎡(1평)당 3000만~4000만원 대에 시세가 형성됐지만 1년 새 5000만~5500만원 정도로 가격이 뛰었다. 대지면적 165㎡짜리 원룸 건물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15억~20억원 하던 건물이 25억~30억원 정도로 오른 셈이다.

왕십리 K공인 관계자는 “가격이 올라 수익률이 예전만 못하기는 하지만, 수요가 탄탄해 공실 우려가 크지 않다는 것이 이 지역 원룸의 장점”이라며 “가령 건물이 25억원이라고 할 때, 대출도 받고 일부 원룸을 월세에서 전세로 돌려 자금을 마련하면 실제로 필요한 비용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