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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정보 패러독스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

블핵홀 2013. 11. 4. 09:35

 

블랙홀 정보 패러독스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

 

 있는 과에세이   최근 스티븐 호킹의 자서전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가 출간돼 화제다. 잔에 와인을 따를 때 자신도 모르게 자꾸 흘리는 게 이상해서 병원을 찾은 21살의 호킹은 루게릭병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병에 걸려 살날이 2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이 뛰어난 청년 물리학도는 그 뒤에도 50년을 더 살아 71세에 자서전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가히 기적이라고 할 만 하다.

호킹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1988년 펴낸 책 <시간의 역사>가 공전의 히트를 친 게 계기가 됐지만, 물리학계에서는 1974년 학술지 ‘네이처’에 실은 블랙홀에 관한 2페이지짜리 짤막한 논문으로 스타가 됐다. 이해 호킹은 32살의 젊은 나이로 영국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1974년 논문은 오늘날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로 불리는 현상을 제안하고 있는데 그 발상이 천재적이다. 즉 블랙홀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부터 예상된 천체인데(이론적으로 존재가 예측된 뒤 수십 년이 지나 실제로 관측됐다), 엄청난 중력을 갖고 있어 어느 선(‘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른다) 안에 들어서면 물질은 물론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다. 따라서 블랙홀은 더 무거워지면 무거워졌지(물질이 유입되므로)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천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호킹은 현대물리학의 다른 한 축인 양자이론을 블랙홀에 적용했고, 그 결과 흥미로운 결론에 이르렀다. 양자이론에 따르면 진공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無)가 아니라 끊임없이 물질과 반물질이 생겨났다 소멸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사건의 지평선 부근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순간적으로 생겨난 물질 반물질 쌍 가운데 하나가 블랙홀의 영향에서 벗어나면(이를 ‘호킹 복사’라고 부른다) 남은 짝은 블랙홀에 흡수되면서 블랙홀의 에너지를 그 만큼 없앤다는 것. 결국 호킹 복사는 블랙홀 외부로 유출된 블랙홀 내부의 에너지인 셈이다.

따라서 외부 물질 유입이 없다면 블랙홀은 호킹 복사를 통해 결국은 에너지를 소진하고 증발하게 된다. 호킹의 계산에 따르면 태양만한 블랙홀이 호킹 복사로 증발하는데 10의 67승 년이 걸린다고 한다. 천문학적 스케일로도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따라서 아직까지 실제 호킹 복사가 일어나는지 관측하지는 못했지만,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을 접목해 영원의 존재라고 여겼던 블랙홀도 수명이 있음을 제안한 그의 가설은 물리학계에 큰 충격을 줬다.

▲ 호킹 복사로 인한 정보의 소실이라는 ‘블랙홀 정보 패러독스’를 피할 수 있는 새로운 가설이 나왔다. 이에 따르면 블랙홀은 완전히 증발하는 게 아니라 정보를 함유한 잔재물을 남긴다. 이 과정을 보면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 부근에서 가상 입자쌍이 생긴다(1). 이 가운데 하나는 블랙홀로 떨어지고 다른 하나는 블랙홀을 벗어날 수 있는데(호킹 복사) 이 과정에서 블랙홀은 에너지를 잃는다(2). 그러나 사건의 지평선의 시공간 왜곡이 심해져 어느 순간 가상의 입자쌍 모두가 블랙홀 내부로 향하게 돼 더 이상 증발이 일어나지 않아 블랙홀은 정보를 유지한 채 살아남는다(3).  ⓒ‘네이처’

새로운 가설이 나왔지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호킹 복사는 또 다른 모순을 품고 있었다. 즉 호킹 복사는 사건의 지평선 부근에서 일어나는 양자요동의 결과이므로 블랙홀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데, 이를 통해 블랙홀이 사라진다면 블랙홀의 정보는 어디로 갔느냐 하는 문제다. 그런데 양자이론에 따르면 정보는 보존돼야 한다. 따라서 이를 ‘블랙홀 정보 패러독스(black hole information paradox)’라고 부른다.

호킹 복사를 제안하면서 호킹은 결국 정보 보존이란 양자이론의 대전제를 포기한 셈인데, 많은 물리학자들은 호킹 복사에 열광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블랙홀의 정보가 사라진다는 호킹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정보를 살릴 수 있는 호킹 복사 메커니즘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즉 정보가 블랙홀 잔재물에 포함된다는 가설, 새로 생긴 우주에 남아 있다는 가설, 말려 있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다는 가설, 사건의 지평선에 남겨둔다는 가설 등이 나왔다. 그러나 다들 허점이 있어 반론의 여지가 있고 무엇보다도 사실여부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학술지 ‘네이처’ 10월 31일자에는 호킹 복사에 대한 새로운 메커니즘을 소개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의 우주론자 조지 엘리스 교수는 “노(老)블랙홀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패러디로 자신의 가설을 요약했다. 그는 지난 10월 17일 논문 초고를 미리 올리는 사이트인 arXiv에 자신의 논문을 공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호킹 복사로 블랙홀이 완전히 증발하는 건 아니고 어느 지점에 이르면 더 이상 줄어들지 않는 채 정보를 보존하고 있다는 것. 즉 사건의 지평선 부근은 엄청난 중력으로 시공의 왜곡이 심하기 때문에 호킹 복사의 일부가 블랙홀 내부로 되돌아가고, 일단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 그러나 엘리스 교수의 가설 역시 엄밀한 수학적 증명이 빠져 있어 물리학자에게 그다지 설득력을 갖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호킹 복사를 제안한 당사자인 호킹은 30년 만인 2004년 정보가 사라진다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면서 대안을 찾은 것 같다고 얘기했다. 언제 발표하나 다들 기다렸지만 그 뒤 흐지부지된 걸로 봐서 그가 패러독스를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호킹 복사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블랙홀 정보 패러독스는 일류 물리학자들조차도 풀지 못하는 미스터리로 언제까지나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