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2005년 8월 타임지 표지화면 캡처)
화성에서 과거 거대한 물웅덩이 흔적이 발견되고, 인류 최초로 혜성에 탐사선이 착륙하면서 생명의 기원, 외계생명체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과거 화성에 물이 존재했다면 생명체가 살았을 가능성이 높고, 만약 생명의 흔적이 발견된다면 이 광활한 우주에는 지구
외에도 각기 다른 모양으로 진화한 외계 생명체들이 수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혜성과 소행성에서 잇따라 발견되는 유기물들은 생명의 외계기원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외계기원설은 지구에 생명을
촉발한 유기물이 태양계 초기에 지구와 충돌한 혜성, 소행성으로부터 왔다는 학설이다.
생명의 기원과 외계생명체의 존재 문제는 아직은 풀리지 않은 불가사의의 영역이 남아 있지만 이미 이룩한 업적과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해답을 찾을 날은 머지않아 보인다.
인류 최초의 혜성 착륙선 필레가 혜성 표면에 착륙하는 장면을 그린 개념도 (사진 출처=ESA)
◈ 창조론과 진화론
그런데 생명의 기원이나 외계생명체 문제를 다룰 때면 항상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 "과연 우주와 생명은 성서에 쓰인것처럼 절대자 '신'에 의해 창조되었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 핵심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과 관련해 과학이 이룩한 업적이 성서의 내용과 부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이고, 이는
성서에서 '창조주가 6일 동안 우주와 세상 만물을 창조했다'고 기록한 창세기의 내용과 조화를 이루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
된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우주의 기원으로 빅뱅(대폭발)이론이 가장 유력하다고 본다.
빅뱅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137억년 전 특이점으로 불리는 한 점이 폭발해 탄생했고, 지구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100억년 후인 38억년전의 일이다. 그리고 인류의 조상이 출현한 것은 불과 300만년 전의 일이다.
현대 과학에 기초한 이 우주 역사는 창조주가 6일에 걸쳐 인간이 살 수 있는 완성된 형태의 우주와 세상만물을 창조했다고
기록된 성서 내용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으로 상징되는 과학과 기독교 간의 오랜 논쟁은 본질적으로 바로 이 모순에서 출발한다.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이 처음 촉발된 것은 1859년 다윈이 자신의 진화론을 체계화한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라는 책을 출판하면서였다.
생물은 생활환경에 적응하면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해 왔다고 주장한 진화론은 당시 기독교가 지배하던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다원은 종교계로부터 원숭이의 자손이라는 비아냥과 함께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론을 옹호하는 각종 연구 결과들이 나오면서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우주의 기원으로서 빅뱅이론도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더욱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다듬어지면서
하나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뛰어난 성능의 허블우주망원경은 130억년 전, 즉 빅뱅 이후 불과 7억년이 지난 초기 우주의 모습을 눈으로 관찰하는데
성공했고, 수많은 첨단 관측 장비에서 얻은 데이터로 우주가 진화해온 과정이 규명되고 있다.
우주가 만들어지고 인간이 등장하기까지 100억년이 걸렸다는 과학적 탐구 결과는 성서의 6일과 도무지 양립할 수
없는 내용이다.
◈ 모순을 모순이 아니라고 말하는 교황
그러나, 세계인으로부터 정신적 지도자로 존경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모순된 사실을 모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황은 지난 10월 27일 교황청 과학원 총회에서 "오늘날 세상의 기원으로 제시되는 빅뱅은 신적 창조자의 관여와 모순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자연의 진화는 창조의 개념과 충돌하지 않으며 이는 진화가 나타나려면 진화하는 존재들의 창조가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났다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빅뱅으로 불리는 대폭발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신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고, 자연의 진화는 결국 이런 창조가 있었
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의미다. 교황의 언급 대로라면 우주의 탄생, 생명의 기원과 관련해 현대 과학이 이룩한 업적은
그 어떤 것도 성서와 상충되지 않으며, 따라서 배척할 이유도 없다.
교황의 발언은 일반 성직자가 개인적 소신과 지식에 근거해 성경을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조직화된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교황의 발언은 가톨릭 신자들이 현대 과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의 의미를 갖는다. 또한 교황의 말은 기록으로 남아 엄격한 역사적 책임도 따른다.
특히 과학에 대한 교황의 성경적 해석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이 자문을 하고 있다.
교황의 과학적 인식에 토대를 제공하는 교황청 과학원에는 물리학, 생리학, 생물학 등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가
80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중에는 생존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꼽히는 스티븐 호킹 박사도 포함돼 있다.
바티칸 교황청 (사진=유튜브 영상 캡쳐)
◈ 교황청의 아픈 역사
그렇다면 같은 창세기 구절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떻게 이런 식의 해석이 가능했을까?
이 의문을 풀기위해서 350여년 전의 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과학과 종교가 대립한 최초의
사건으로 간주되는,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이다.
당시 갈릴레이는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찰하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동설을
옹호하는 내용의 책을 썼다. '프톨레마이오스-코페르니쿠스 두 개의 주요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란 제목의
책이다.
책이 발간되자 교황청은 지동설이 '철학적으로 우매하고 신학적으로 이단적'이라며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에
회부했다. 갈릴레이는 종신 가택연금 형을 받게 되고, 사후 장례식과 묘비를 세우는 것도 금지됐다.
또한 지동설과 관련된 어떤 것도 말이나 글로 주장하지 않겠다는 굴욕적인 맹세도 해야 했다.
종교 재판 직후 갈릴레이는 저 유명한 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혼잣말로 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여러 정황으로 보아 실제 그랬을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당시 교회가 지동설을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오직 성서의 한 구절 때문이었다.
구약성서 여호수아 10장 13절에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에서 정복전쟁을 벌일 때의 일을 설명하며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라고 기록된 부분.
교황청은 이 성경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 결과 지구는 정지해 있고 태양이 움직여야 한다고 본 것이다.
지동설이 당연해진 지금 기준으로 보면 교황청의 성경 해석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천동설을 믿던
당시의 과학 지식으로는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갈릴레이의 주장은 옳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 사건은 두고두고 교황청의 뼈아픈 역사로
남게 됐다. 교황청은 갈릴레이 사후 350년만에 재판이 잘못됐음을 시인하고, 사죄했으며 그 반성의 의미로
교황청 소유의 천문대를 짓고, 천문학 연구에 투자도 하고 있다.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은 성경을 자구 그대로 해석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일깨워 준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천동설을 암시하는 듯한 성서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교황청을 설득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또 한정된 지식에 얽매여 성경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 역시 얼마나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교황청이 성경을 자구대로 해석한 것은 결국 천동설을 진리라고 믿었던 지식의 부재도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 교황의 창세기 해석
다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빅뱅과 진화론이 성경과 모순되지 않는다면 교황은 창세기를 과연 어떻게 이해한 것일까?
창세기에는 천지창조 이전부터 존재한 야훼가 6일간 천지를 창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1일에는 빛이 있으라 하여
빛을 만들었고, 제2일에는 하늘, 제3일에는 땅과 식물, 제4일에는 천체, 제5일에는 물고기와 새, 제6일에는 나머지 동물과
이들을 지배하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다. 그리고 제7일에는 천지 창조를 끝낸 것을 축복하며 안식했다고
기록돼 있다.
교황은 창세기에 기록된 이 6일을 문자에 얽매여 태양력 6일로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많은 곳에서 은유와
상징적 표현이 사용되듯 창세기의 하루는 태양일의 하루와 다른 차원으로 해석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일부 성서학자
들은 하늘에서의 하루로 해석하기도 한다.
태양일 기준의 6일 개념에서만 탈피하면 성경의 은유와 비유적 표현을 감안할 때 빛에서 시작해 인간의 창조로 마무리
되는 창세기의 창조과정은 현대 물리학에서 빅뱅으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과 크게 모순될 것이 없어 보인다.
빅뱅과 진화론이 성경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언은 직접 설명을 하진 않았지만 이런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다.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실험과 관측으로 검증된 과학적 사실은 논리적으로 성경과 배치될 수 없다. 과학적 사실
은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만약 어떤 과학적 사실이 성경과 배치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의 문제가 아니라 한정된 지식으로 성경을 잘못 해석한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성경에 대한 특정 해석을 유지하기 위해 과학적으로 검정된 객관적 사실을 부정한다면 무지로 인해 성경을 잘못 해석한
갈릴레이식 종교재판과 다를 것이 없다.
◈ 지식과 지혜
과학적 사실이라고 해도 결코 완전하고 영원한 것은 아니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는 지구가 공전하는 태양은
정지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태양계는 은하의 중심을 축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이후
밝혀졌다.
뉴턴의 물리학은 시간과 공간도 상대적이라는 것을 입증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그 한계가 드러났다.
상대성 이론도 현대 물리학의 또 다른 한 축인 양자역학과 서로 모순된 측면이 발견됐다.
동일한 물리계를 상대로 하는 두 법칙이 서로 부합하지 않는다면 어딘가에 허점이 있고 불완전하다는 의미다.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두 이론이 부합하는 보편적인 이론을 끌어내기 위해 이른바 끈 이론과 같은 통합이론이 가설로
제기되고 있다.이처럼 우리가 옳다고 믿고 있는 지식도 상대적이며 완전한 것은 아니다.
반면 사물의 도리와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는 지식과 무관하게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 수천년 전
성인들의 가르침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은 그 속의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성서가 말하려는 본질도 바로 이 삶의 지혜이고,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구원', 즉 '천국에 이르는 지침서'이다.
성경 속에 흐르는 지혜를 보려하지 않고 특정 구절을 있는 그대로 적용하며 과학이 잘못됐다고 우기는 것이나, 과학적
사실을 인용해 성경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것은 둘 다 지극히 어리석고, 무의미한 일이다.
자신이 만든 망원경을 통해 지동설이 옳다고 믿은 갈릴레이도, 오늘날 발달한 과학기술에 힘입어 첨단 허블우주망원경으로
270억년 전 우주를 보고 있는 프란치스카 교황도 그로인해 종교적 믿음이 달라질 이유는 없었다.
단지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됨으로서 성서에 담긴 지혜를 더 정확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의
지평이 넓혀졌을 뿐이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영역이고, 결코 대립하거나 모순될 이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