Ⅸ.상대성 이론 등 물리 이론/47.[물리산책] '표준모형

[물리산책] '표준모형 너머'를 꿈꾸다

블핵홀 2016. 6. 9. 07:17

‘표준모형 너머’를 꿈꾸다 우리는 아직 우주의 95%를 모른다

중국의 중성미자 검출장치. 홍콩에서 북동쪽으로 52km 떨어진 다야만(Daya Bay)에 있는 핵발전소

인근에 설치돼 있다. 2012년 김수봉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팀과 거의 동시에 중성미자 변환을 발표했다.

<출처: Roy kalschmidt, 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



스티븐 와인버그 (Steven Weinberg, 1933~)는 표준모형을 완성한 공로로 셸던 글래쇼, 압두스 살람과 함께 197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업적이 처음부터 의도했던 결과는 아니라고 회상했다(의도치 않았던 결과로 노벨상을 받다니!).

사실 본인은 힉스 메커니즘 을 이용해 핵입자들을 묶어주는 힘(강력)을 설명하고자 했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됐다.

고민하던 그는 힉스 메커니즘이 오히려 약력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결국 풀고자 했던 문제는 못 풀었지만 다른 더 중요한 문제를 풀었던 것이다.


완벽한 표준 모형?

표준모형은 마치 야누스의 얼굴 같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아름답지만 아름답지 않다.

모순된 말이지만, 물리학자들은 표준모형에서 아름다움과 미학적 불편함을 동시에 느낀다.

표준모형의 핵심은 전자기력과 약력의 근원이 같다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하나의 수식으로 두 힘을 기술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는 이 두 가지의 힘이 매우 다르다.

와인버그는 이를 힉스 메커니즘에 의해 전기력과 약력의 ‘대칭성’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칭성은 물리계에 적용되는 법칙을 바꾸지 않은채로 물리계에 좌표이동 등 다양한 변형을 가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대칭성이 깨졌다는 것은 자유롭게 계산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즉, 전자기력과 약력은 우주 탄생 초기 온도가 높았던 얼마 동안은 하나의 수식으로 기술할 수 있는 힘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우주의 온도가 식어가면서 대칭성이 깨지는 바람에 서로 다른 힘으로 갈라져 나왔다는 뜻이다.

2013년 힉스 입자의 발견으로 이 같은 표준모형의 핵심적인 내용들은 모두 검증됐다. 실로 ‘아름답다’고 할 만하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마이컬슨. 그는 이미 19세기 말 물리학이 완성됐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했던 실험에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싹텄다.


“아마도 중요 기본 원리들은 다 밝혀졌다.

앞으로는 소수 여섯째 자리(더 정밀하게)를 측정하는 것이 물리학에서 할 일이다.”

이 말은 물리학자 알베르트 마이컬슨이 1894년에 한 말이다. 19세기 말에 이미 물리학의 완성을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에드워드 몰리와 함께 한 실험(마이컬슨-몰리 실험)이 20세기 특수상대성이론의 토대가 됐으니,

아이러니 한 일이다. 어쩌면 힉스 입자의 발견을 두고 표준모형의 완성을 논하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지도 모른다.


19세기 말에는 이미 고전역학, 고전적 전자기학 이론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몇 가지 난제들이 있었지만 새로운 원리가

필요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현대물리학인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탄생하게 됐고, 이는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데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현대물리학의 탄생을 이끈 상황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표준모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실험 결과 또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표준모형은 많은 부분에서 매우 정밀하게 현실을

설명하고 있지만, 표준모형의 예측과 다른 실험 결과도 없지 않다.

또 많은 물리학자들은 모든 힘이 통일되는 플랑크 에너지 대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현재의 표준모형으로 설명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표준모형으로는 모든 힘을 통일해서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점들이 물리학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어쩌면 인류는 다시 한번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우주의 근본, 기본입자 17표준모형은 우주의 5%에 해당하는 입자들을 구성하는 기본입자가 17개라고 설명한다. 기본입자는 그 안에 다른 구조가 없는 입자지만 붕괴할 수는 있다. 표준모형의 기본입자들은 각각 6개의 쿼크와 6개의 경입자(Lepton), 힘을 매개하는 4개의 보존과 힉스 입자다. 이 가운데 쿼크는 2~3개씩 짝지어 양성자와 중성자를 비롯해 약 260개의 강입자(Hadron)들을 만든다. 강입자는 강한 상호작용(강력)을 하는 입자들로, 두 개의 쿼크로 이뤄진 중간자(Meson)와 세 개의 쿼크로 이뤄진 중입자(Baryon)로 나뉜다. 중입자에 속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강입자들은 순식간에 붕괴하기 때문에 입자가속기나 우주에서 오는 우주선(cosmic ray)에서나 관측할 수 있다. 강입자와 달리 강력의 영향은 받지 않고 전자기 상호작용(전자기력)과 약한 상호작용(약력)만 하는 입자들을 경입자라고 한다. 대표적인 경입자는 원자 속에 들어 있는 전자, 그리고 전자중성미자다. 여기에 뮤입자(뮤온)와 뮤온중성미자, 타우입자(타우온)와 타우중성미자가 더해지는데, 뮤온과 타우 입자는 불안정해서 매우 빨리 붕괴된다. 마지막으로 기본입자 중에서 가장 늦게 발견된 힉스는 표준모형에서 기본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메커니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입자로, 이제 막 구체적인 연구가 시작된 단계다. <출처: 동아사이언스>


그래서 최근 물리학자들은 표준모형을 포괄하는 더 큰 이론인 표준모형 이후의 물리학(Beyond the Standard Model·BSM)

을 연구하고 있다. 이론가들은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실험가들은 그 모델이 맞는지 실험으로 검증하고 있다.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표준모형의 구조와, 표준모형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가 모르는 표준모형


중성미자는 뭔가 특이하다



일본의 중성미자 검출기_슈퍼-카미오칸데 <출처: Kamioka Observatory, ICRR, The University of Tokyo>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은 중성미자의 종류가 바뀐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밝혀낸 일본 도쿄대 카지타 다카아키 교수와 캐나다 퀸즈대 아서 맥도날드 교수가 받았다. 표준모형과 관련한 19번째 노벨상인 이들의 업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아직 표준모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표준모형에 일부 수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와인버그가 정립한 표준모형에 따르면 중성미자의 질량은 0이어야 한다. 하지만 중성미자의 종류가 바뀌기 위해서는 질량이 0이 아니어야 한다. 표준모형에서는 힉스 장과 기본입자들의 상호작용 때문에 입자들의 질량이 생긴다고 설명하는데, 중성미자의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아 질량의 존재를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중성미자의 질량이 다른 기본입자에 비해 매우 작은 것도 미스터리다. 따지고 보면 중성미자는 그 자체가 특이한 존재다. 중성미자는 스핀(질량, 전하량처럼 입자가 가진 고유한 특성) 방향이 늘 한쪽으로만 향하는 이상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표준모형은 그 현상을 설명할 뿐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유는 모른다. 심지어 중성미자가 입자와 반입자로 구분이 되는 것인지(디랙 중성미자), 아니면 입자와 반입자가 동일한 것인지(마요라나 중성미자) 역시 기존 실험 결과만으로는 알 수 없다.

 

힉스 입자, 발견이 끝이 아니다



2012년 7월 4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힉스 입자를 관측했다고 공식 선언했다. 힉스 메커니즘을 처음 제안한 피터 힉스와 프랑수아 앙글레르는 201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거대강입자충돌기(LHC)를 이용하는 아틀라스(ATLAS)와 시엠에스(CMS) 검출기를 이용해 밝혀낸 사실은 힉스 입자가 표준모형에서 예측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붕괴하며, 스핀이 0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치한다는 것은 언제나 실험적 오차를 고려해야 하는 것으로, 아직까지는 힉스 현상과 관련된 측정오차가 약 10% 정도다. 이때문에 정밀도를 높여 측정했을 때 표준모형이 설명하는 힉스 입자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힉스 입자가 정말로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기본 입자일까. 힉스 입자를 구성하는 새로운 입자들이 있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물리학자들은 아직 명확하게 답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힉스 입자끼리 서로 상호작용하는 세기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측정해 봐야 한다.


표준모형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


현실과 표준모형의 예측값이 다르다?



표준모형에서 예측한 현상은 거의 대부분 실제로 실험에서 확인됐다. 하지만 예상한 결과와 전혀 다른 실험 결과가 있는데, 바로 뮤온 입자의 자기모멘트(magnetic moment) 문제다. 자기모멘트는 입자가 자기장에 반응해 회전하는 힘을 받는 정도를 말한다. 뮤온은 스핀이 1/2인 입자로, 자기모멘트와 스핀의 관계식을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표준모형이 예측한 값과 실제 측정된 값의 차이가 측정 오차의 3.6배에 달한다. 이는 표준모형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으로, 많은 물리학자들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표준모형을 포함하는 ‘초대칭모형’이나 ‘가벼운암흑광자이론’ 등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많던 반물질은 다 어디로 갔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초기 우주의 입자들 가운데 10억 분의 1정도가 살아남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은하와 별, 행성 등을 구성하고 있다. <출처: NASA>



사람을 비롯한 모든 물체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를 기초로 구성돼 있다. 반물질은 말 그대로 반양성자, 반중성자, 양전자로 이뤄진 물질을 말하는데, 현재 우주에는 반물질이 거의 없다.하지만 우주가 빅뱅으로부터 탄생했을 때는 입자와 반입자가 같은 수만큼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우주는 물질의 밀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당연히 입자와 반입자가 충돌해 소멸하면서 감마선, 즉 순수 에너지 형태로 바뀌는 사건이 수없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관측 결과를 보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초기 우주의 입자들 가운데 10억분의 1정도가 살아남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은하와 별, 행성 등을 구성하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입자와 반입자가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차이가 생겼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표준모형에서도 기묘(strange)쿼크 또는 바닥(bottom)쿼크가 들어간 중간자(meson) 계에서는 입자와 반입자의 차이가 관측됐다. 특정 중간자가 붕괴하면서 나타나는 두 가지 반응의 비율이 같아야 대칭성이 있는 것인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재 우주의 비대칭성을 설명하기에는 그 차이가 너무 작다. 물리학자들은 중성미자를 관측해 ‘CP대칭성 ’이 깨지는 현상을 관측했고,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5%를 넘어, 26.8%를 찾아라



미국 천문학자 베라 루빈은 은하를 구성하는 별들이 은하 중심을 기준으로 회전하는 속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회전 속도가 중심으로부터의 거리에 관계없이 비교적 일정하다는 사실을 1970년대에 밝혀냈다. 하지만 만유인력 법칙에 따르면 은하 주변부로 갈수록 별들의 회전 속도가 느려져야 한다. 따라서 이를 설명하려면 직접 관측되지 않은 질량이 있어서 중력의 효과를 줘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암흑물질 이라고 부른다.


우주 공간의 일부분을 육면체 모양으로 잘라 본 모습. 섬유처럼 보이는 파란색 부분이 초기 암흑물질이다.<출처 NASA, ESA>


연구 결과 암흑물질은 단순한 먼지나 미세한 알갱이, 가스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다. 보통의 원자나 분자들은 빛을 산란시키는데, 암흑 물질은 그런 성질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중력 렌즈 효과와 우주배경복사의 비균질성 등 암흑물질의 존재를 시사하는 현상은 이후로도 계속 관측됐다. 암흑물질은 아직 가속기 실험으로는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암흑물질이 기본 입자의 한 종류인지, 질량이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서도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표준모형의 입자는 우주 전체 에너지의 약 5%에 불과한 반면, 암흑물질은 우주 전체 에너지의 약 26.8%를 차지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아직 우주의 95%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표준모형 ‘너머’가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최수용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로 고에너지 강입자 충돌 가속기 실험 전문가다. 한국 최대 입자 물리 실험 그룹인
한국-CMS 실험 연구팀의 연구책임자를 맡고 있다.


보존 스핀의 과학 24 - 보즈와 아인슈타인

노벨상을 받고 3년 후, 한창 바쁘던 아인슈타인은 낯선 이름의 인도 출신 젊은이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그리고 그 한 통의 편지는 물리학의 역사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다.


1924년 6월 아인슈타인은 인도 다카(Dhaka) 대학의 한 물리학 교수가 보낸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이 편지에는 논문이 한 편 동봉되어 있었으며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1)

선생님이 꼭 읽어주시고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라면서 논문을 동봉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정말 알고 싶습니다.

보시면 제가 고전 전기역학과는 상관없이, 위상공간에서 궁극적인 공간의 단위가 이라고 가정하는 것만으로 플랑크

법칙에서 계수가 임을 유도하려고 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저는 독일어를 잘 몰라서 논문을 독일어로 번역할 수가 없습니다.

이 논문이 출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물리학 잡지 Zeitschrift fur Physik>에 게재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생판 남이지만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논문을 통해서만 가르침을 받았지만 모두 선생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1924년, 인도의 젊은 물리학자, 사티옌드라 보즈


사티옌드라 보즈


그의 이름은 사티옌드라 보즈(Satyendra Nath Bose, 1894-1974)였다.

인도 캘커타에서 태어나고 자란 보즈는 어려서부터 수학과 과학에 재능을 보였고, 캘커타의 프레지던시 컬리지에서

공부한 후 캘커타 대학을 거쳐 다카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현대물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보즈는 독일어로 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논문이 포함된

책을 번역해서 캘커타 대학에서 출판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보즈는 아인슈타인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허락을 구한 적이 있었으므로, 아인슈타인과 전혀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다. 또한 보즈는 동료와 함께 쓴 논문을 영국의 학술지인 <필로소피컬 매거진>에 출판하는 등, 비록 유럽에 간

적은 없지만 꾸준하고 활발하게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번 편지에 보즈가 동봉한 논문도 독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친구가 사다 준 막스 플랑크의 책을 공부하고 나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쓴 논문이었다.

보즈는 이 논문을 전 해에 <필로소피컬 매거진>에 투고했다가 심사에서 떨어져서 게재되지 못하자,

아인슈타인에게 보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보즈의 논문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곧바로 보즈에게 답장을 보내 이 논문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직접 논문을 독일어로 번역해서 1924년 7월 <물리학 잡지>에 투고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2)

내 의견으로는 보즈가 플랑크의 공식을 유도한 것은 중대한 진전을 의미한다. 내가 곧 상세하게 계산해서 발표하겠지만,

여기 사용된 방법은 이상기체의 양자론에도 적용될 수 있다. 

“플랑크의 법칙과 빛의 양자 가설 Planck's law and the light quantum hypothesis”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에서 보즈는

빛을 질량이 없는 입자, 즉 빛의 양자(light quanta)라고 가정하고, 흑체복사를 일정한 부피 안에 들어있는 빛의 양자들이라

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때 빛 양자의 운동량은 인데, 이러한 빛 양자가 분포하는 위상공간이 이라는 기본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면 흑체복사에서 복사 에너지 분포를 설명하는 플랑크의 공식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보즈는 이 논문에서 “단위 위상공간의 수는 정해진 부피 안에 광자의 가능한 배열의 수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면서

주어진 빛의 진동수 영역에서 단위 위상공간의 수를 세고, 거기에 빛의 양자가 분포하는 방법의 수를 계산했다.

보즈의 논문에서 중요한 요소는 모든 빛의 양자들이 서로 구별할 수 없는 입자라는 것이었고, 아인슈타인이 주목한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곧바로 보즈의 논문을 지지하는 논문을 써서, 보즈의 논문과 같이 <물리학 잡지>에

 게재했다. 이로써 보즈의 논문은 금방 중요한 논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보즈-아인슈타인 응축


보즈는 빛의 양자가 분포하는 방법을 생각할 때 배타원리를 고려하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 그 때는 아직 배타원리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입자를 서로 구별할 수 없고, 하나의 상태에 있을 수 있는 입자의 수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면 통계법은 어떻게 될까?

앞에서 볼츠만 통계법과 페르미 통계법으로 계산했던 대로 세 개의 입자가 네 개의 상태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의 수를 세어

보자. 간단하다. 볼츠만 통계법으로 셀 때, 입자를 구별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세 개의 입자가 모두 하나의 상태에 있는 경우 네 가지, 한 상태에는 두 개, 다른 하나에는 한 개의 입자가 있는

방법 3×4=12가지, 입자가 각각 다른 상태에 들어가는 방법 네 가지, 모두 4+12+4=20가지가 된다.

이 통계법을 보즈-아인슈타인 통계라고 부른다.

그리고 보즈-아인슈타인 통계를 따르는 입자를 보존(boson)이라고 한다.

보즈가 플랑크 법칙을 올바르게 유도한 것을 보면, 빛의 양자를 세는 데는 보즈-아인슈타인 통계법이 올바른 통계법임에

틀림없다.

즉 빛의 양자는 보존인 것이다.


보즈와 아인슈타인은 이 아이디어를 더욱 밀어붙여서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했다.

모든 입자가 단 하나의 상태에 있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보는 거시적인 물리 세계는 수많은 양자 상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 때문에 양자 효과는 모두 상쇄되고 평준화되어 우리에게 익숙한 뉴턴 역학이 지배하는 세상이 된다.

그런데 만약 모든 입자가 하나의 상태에 있는 극단적인 경우가 되면 양자역학의 효과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런 특별한 물질의 상태를 보즈-아인슈타인 응축이라고 부른다.


170 나노캘빈의 낮은 온도에서 루비듐 원자들에 보즈-아인슈타인 응축이 일어났다. 왼쪽부터 200nK, 100nk, ~0nK로 온도가 낮아지면서,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노란 부분이 밀도가 매우 높은 파란색-흰색 부분으로 응축이 일어났다. <출처: ©NIST/JILA/CU-Boulder>


물론 모든 입자가 하나의 상태에 있는 일이 쉬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간단한 예로는 온도가 극히 낮은 상태를 들 수 있다.

온도가 극히 낮아지면 입자들이 점점 더 낮은 에너지 상태가 되고, 결국 어느 온도 이하에서는 모든 입자가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게 된다. 따라서 그럴 때 일어나는 초전도나 초유동과 같은 양자역학적 현상들도 보즈-아인슈타인 응축과

관련이 깊다. 1995년에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코넬(Eric Allin Cornell, 1961-)과 위먼(Carl Edwin Wieman, 1951-)이

루비듐 원자를 170 나노캘빈 (절대 0도에서 천만 분의 1.7도 위인 온도)에서 기체 상태로 보즈-아인슈타인 응축 상태가

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최초로 순수한 보즈-아인슈타인 응축 상태를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코넬과 위먼은 이 업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나트륨 원자로 같은 실험을 수행한 MIT의 케테를 (Wolfgang Ketterle, 1957-)

과 함께 200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보즈-아인슈타인 응축은 아직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다.


이미지 목록


보즈-아인슈타인 응축 현상에 대한 연구로 200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에릭 코넬, 칼 위먼,

볼프강 케테를레(왼쪽부터) <출처: ©Nobel Foundation>


페르미-디렉 vs. 보즈-아인슈타인

보즈가 플랑크 법칙을 성공적으로 유도한 것을 보면 빛의 양자에는 배타원리가 적용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배타원리는 전자에만 적용되는 것일까?

두 통계법은 각각 어떤 경우에 적용되는 것일까?

왜 그런 차이가 생겨나는 것일까?

앞에서 말한 1926년 디랙의 논문이 바로 이 문제를 다루는 논문이다.

 “양자역학 이론에 관하여 On the Theory of Quantum Mechanics”라는 제목의 이 논문에서 디랙은 전자의 고유함수의

성질을 통해서, 전자가 보즈-아인슈타인 통계법을 따를 때와 페르미-디랙 통계법을 따를 경우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했다.

(물론 페르미-디랙 통계법이라는 말은 디랙이 이 논문을 쓸 때는 존재하지 않았다.)

디랙의 설명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가장 기초적인 양자역학의 법칙은 두 입자가 완전히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 두 입자가 똑같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물리학의 법칙이란 아무리 교묘하고 복잡하게 보일지라도,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는 단순한 법칙이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두 입자로 이루어진 상태를 생각한다.

만약 두 입자가 똑같다면 두 입자를 바꾸어도 당연히 원래의 두 입자 상태와 물리적으로 똑같을 것이다.

이를 좀 더 물리학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두 입자 사이에 교환 대칭성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문제가 조금 더 복잡해진다.

이제 이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를 라 하자.

교환 대칭성에 따르면, 이 파동함수에서 두 입자를 바꾼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 가 원래의 파동함수

와 같은 물리현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때 조심할 것은, 물리현상이 같은 것이지 파동함수 자체가 같을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양자역학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오직 파동함수를 통해 얻는 확률에 의해서 결정되며, 확률은 파동함수의 제곱에 의해

정해진다. 따라서 같은 현상을 나타내는 두 파동함수는 그 자체가 같은 게 아니라 그들의 제곱이 같은 것이다. 즉


\combi ^{ 2 }{ \left| \psi (\combi _{ 1 }{ x },\combi _{ 2 }{ x }) \right|  }=\combi ^{ 2 }{ \left| \psi (\combi _{ 2 }{ x },\combi _{ 1 }{ x }) \right|  }


이다. 그렇다면 두 입자를 바꾼 파동함수는 원래의 파동함수와 똑같을 수도 있고, (-) 부호가 붙어있을 수도 있다.

이거나 이다. 전자를 대칭(symmetric) 파동함수라고 부르고 후자를

반대칭(antisymmetric) 파동함수라고 부른다.



대칭 파동함수(아래)와 반대칭 파동함수



대칭 파동함수를 가지는 입자가 곧 보존이고, 반대칭 파동함수를 가지는 입자가 바로 페르미온이다.

먼저 페르미온에 주목하자. 만약 두 입자가 같은 위치에 있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이니

반대칭 파동함수는 0이다.

즉 그런 파동함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두 개의 똑같은 페르미온은 같은 위치에 있을 수 없다.

두 개의 입자가 같은 위치에 있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다.

당장 보존의 경우를 보자.

보존은 두 개의 입자가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해도 파동함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즉 얼마든지 두 개의 입자가, 아니 여러 개의 입자가 같은 위치에 있을 수 있다.


저온에서 보존과 페르미온의 에너지 준위에 따른 입자 상태가 서로 다르다. 보존은 하나의 에너지 준위에 둘 이상의 입자가 있을 수 있는데 반해, 페르미온은 하나의 에너지 준위에는 하나의 입자만 존재한다.


파동함수를 위치가 아니라 다른 양자상태의 함수로 써도 위의 논의는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니까 두 개의 똑같은 페르미온이 같은 양자상태에 있으면 파동함수가 0이 된다.

즉 두 개의 똑같은 페르미온은 같은 양자상태에 있을 수 없다.

그렇다. 바로 파울리의 배타원리다!


이것이 디랙이 그의 논문에서 말했던 내용이다.3)

두 전자가 같은 궤도에 있으면 반대칭 고유함수는 그 자체로 0이 된다.

이는 반대칭 고유함수를 답으로 가질 때 두 개 이상의 전자가 같은 궤도에 있으면 안정된 궤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파울리의 배타원리다.

한편 답이 대칭 고유함수라면 같은 궤도에 얼마든지 많은 전자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러한 답은 원자 속의 전자에

대해서는 옳은 답이 아니다.

조금 더 나아가 보자. 두 전자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두 전자를 나타내는 파동함수는 각각의 전자의

파동함수를 곱한 것으로 표현된다. 이럴 때 페르미온의 파동함수는 다음과 같은 식을 만족한다.



\combi _{ 12 }{ \psi  }=\combi _{ 1 }{ \psi  }(\combi _{ 1 }{ x })\combi _{ 2 }{ \psi  }(\combi _{ 2 }{ x })=-\combi _{ 21 }{ \psi  }=-\combi _{ 2 }{ \psi  }(\combi _{ 2 }{ x })\combi _{ 1 }{ \psi  }(\combi _{ 1 }{ x })

즉 페르미온의 파동함수는 결합하는 순서를 바꾸면 부호가 바뀐다.

그러므로 페르미온의 파동함수는 단순한 숫자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러한 논의는 그대로 전자가 여러 개 있을 경우로 확장해서 생각할 수 있다.

즉 여러 개의 전자가 있을 때, 이들 중 한 쌍을 바꿔놓으면 전체 파동함수의 부호는 바뀐다.


보존과 페르미온, 그리고 스핀


폴 디랙


이제 보존과 페르미온에 대해서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보존과 페르미온은 파동함수의 성질이 다르다.

파동함수의 성질에 의해 페르미온은 배타원리를 따르게 되고, 또한 이 두 종류의 입자는 다른 통계적 성질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스핀은 어떻게 되는가? 스핀과 통계법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는 더욱 심오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스핀을 더 잘 이해하고, 올바른 스핀 이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놀랍게도 스핀의 이론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곧 등장한다.

그 주역은 바로 위의 논문을 썼으며, 무명의 젊은이에서 1925년경부터 급속히 양자역학의 주역 중의 한 사람으로 떠오른

영국의 폴 에이드리언 모리스 디랙이었다.


  글 이강영 |경상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입자물리학 이론을 전공하여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물질의 근본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LHC 현대물리학의 최전선], [보이지 않는 세계], [파이온에서 힉스 입자까지]를 썼다. 현재 경상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불확정성 원리 측정의 과학(3) - 사과를 볼 때와 전자를 볼 때의 차이점


회전하던 동전이 쓰러지려고 한다. 어디로 쓰러질까? 우리는 동전의 운동을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자는 어떨까? 우리는 전자의 운동을 예측할 수 있을까? <출처: (cc) Connie Smith at flickr.com>



모든 물질이 쪼갤 수 없는 입자인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원자론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처음 제시하였다.

하지만 19세기 초 존 돌턴이 화학반응과 화합물의 조성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으로 원자설을 제안하기 전까지, 원자라는 존재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돌턴의 원자설 이후 근대 화학은 급속도로 발전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원소들이 새로이 발견되었다. 이 원소들은 특정한 성질을 공유하는 그룹으로 묶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원소들이 보이는 주기성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이 나왔다. 주기율표가 만들어진 것이다. 주기율표에는 이 세상 모든 원소가 원자번호와 원소의 화학적 특성에 따라 나열되어 있다.


주기율표. 2015년 12월 30일 국제순수및응용화학연맹(IUPAC)에서 승인한 원소까지 포함하여 총 118개의 원소가 나와있다. <출처: (cc) Sandbh at wikimedia.org>


원자 반지름이 여럿인 이유


주기율표에는 각 원소의 밀도, 녹는점, 끓는점, 융해열, 기화열 등의 성질과 더불어 원자 질량, 원자 반지름이 명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구리 원소의 원자 질량은 몰당 63.546그램이고 원자 반지름은 0.135나노미터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구리 원자 반지름이 한 개가 아니고 여러 개라는 사실이다. 구리의 공유 반지름은 0.138나노미터, 판데르발스 반지름은 0.140나노미터다. 산소 원소의 경우는 원자 반지름이 0.060나노미터, 판데르발스 반지름이 0.152나노미터로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원자의 반지름을 정했다는 것은 원자가 공처럼 둥근 구 모양임을 가정한 것인데, 그 크기가 다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앞선 글 [원자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에서 원자의 모습은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기하학적인 구 모양도, 전자가 핵 주위를 공전하는 모양도 아니라고 했다. 19세기 말까지는 1백억 분의 1미터에 불과한 입자의 크기를 직접 측정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원자의 존재 그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었다. 21세기 현재의 기술로도 0.1나노미터의 원자 크기를 직접 측정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주기율표에 각 원소의 원자 반지름을 공유 반지름, 이온 반지름, 판데르발스 반지름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값을 적어 놓은 것은 원자의 반경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외떨어진 원자의 모양을 직접 관찰한 적이 없어, 원자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며 실상이 이렇다고 말을 할 수는 없다. 또 원자의 반지름을 기하학적인 구 모양의 반지름처럼 간단히 정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원자의 반지름은 정하는 방법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장 손쉽게 반지름을 정하는 방법은 여러 개의 원자를 일렬로 늘어놓고 전체 길이를 잰 후, 그 안에 속한 원자 수로 나누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산소 원자 1억 개를 일렬로 정렬했을 때 그 길이가 약 3센티미터라면, 원자 한 개의 지름은 0.3나노미터이고 반지름은 0.15나노미터가 된다. 그런데 만약 산소 원자 사이에 다른 원소가 끼어들어 공유결합이나 이온결합이라도 하게 되면, 원자 간의 거리가 짧아져 원자 반지름이 0.06나노미터로 줄어들 수 있다.


(왼쪽) 판데르발스 반지름 (오른쪽) 공유 반지름 <출처: (cc) UC Davis Chemwiki>


모양이나 크기가 분명치 않은 원자의 반지름을 정하려면,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원자가 붙어 있을 때 원자 핵 간의 거리를 측정하는 방법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다. 그런데 원자들이 서로 가까워지면 각 원자 속 전자들의 위치가 주변 원자의 영향을 받아 바뀌거나 심지어 이웃 원자로 옮겨가는 경우도 생긴다. 결과적으로 각 원자의 반지름은 주변 원자의 환경에 따라 그 크기가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원자 간의 거리를 이용하여 원자 반지름의 크기를 정하면, 원자의 크기는 측정 방법에 따라 제 각각일 수 밖에 없다. 외떨어진 원자의 모양을 명확히 측정할 방법이 없으니 원자의 반지름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측정할 수도 없는 원자의 모양이나 크기를 얘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원자를 단독으로 없다면, 존재는 어떻게 있었을까?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라는 외국 속담이 있다. 여기서 ‘보는 것’의 의미는 글자 그대로 우리 눈의 망막에 비친 이미지를 말한다. 앞선 글 [빛은 어떻게 색이 되는가?]에서 우리 눈이 400나노미터부터 700나노미터까지의 파장을 갖는 빛을 통해 물체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 원리에 대해 얘기했다. 시각세포가 빛을 전기에너지로 바꿔 망막의 이미지를 뇌에 전달하는 원리는, 디지털 카메라의 CCD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것과 같다. 자동차나 사과는 우리 눈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웬만한 크기의 미생물도 광학현미경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바이러스처럼 작은 물체는 전자현미경으로 이미지를 찍을 수 있다. 빛 대신 전자를 이용한 전자현미경은 10만 배 이상의 배율로 측정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원자 크기의 물체 모양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현미경의 종류에 따라 해상도가 다르다. 광학현미경으로는 세균까지 볼 수 있고, 전자현미경으로는 바이러스와 DNA까지 확인할 수 있다. <출처: ©University of Waikato>


앞선 글 [원자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에서, 0.1나노미터 크기의 파장을 갖는 X-선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원자들에 회절하면서 만든 간섭무늬로 원자 간의 간격을 잴 수 있다고 했다. X-선의 간섭무늬로 알 수 있는 것은 원자 간의 간격이다. 실제로 각 원자의 모양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X-선의 회절무늬가 생긴다는 그 자체로 ‘물질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입자의 분명한 모양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를 주지는 않더라도, 원자론에서 제시한 물질의 구성 입자가 원자라는 근거와 원자 간의 거리, 즉 원자 반지름의 정보까지는 제공해주는 것이다.


충돌이 일어나면, 뭔가 있는 것이다


보이지도 않는 작은 물체의 측정에 대해 더 이야기하기 전에 ‘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뉴턴이 사과를 본다고 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생각해 보자. 간단히 살펴보면 밝은 햇빛 아래 놓인 사과는 빛을 반사하고 그 빛은 바라보는 눈의 망막에 이미지를 만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뉴턴은 사과가 놓인 방향과 사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만일 이 사과를 어두운 암실에 놓는다면, 사과에서 반사되는 빛이 없기 때문에 그 위치뿐 아니라 존재 여부도 알 수 없다. 반대로 햇빛이 여전히 같은 위치에 비치는데 사과를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면 반사하는 물체가 없어져 뉴턴의 망막에는 아무런 이미지가 생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뉴턴이 사과의 위치와 존재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은 ‘빛 알갱이’가 사과에 부딪쳐 경로를 바꾸는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과에 반사된 빛을 통해 그 위치를 파악한다.


여기서 ‘본다’는 과정의 핵심은 ‘빛 알갱이’와 ‘사과’의 충돌이다. 사과의 위치는 ‘빛 알갱이’와 ‘사과’의 충돌 지점이다. 이 관점을 조금 더 확장하면, 빛 알갱이 대신 전자를 쓸 수도 있고, 심지어는 야구공을 이용해도 위치를 측정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전자현미경은 바이러스 사진을 찍을 때 바이러스에 부딪혀 반사되는 전자를 이용한다. 다만 사진 이미지의 초점을 맞추는 과정에서, 광학현미경이 일반 렌즈를 사용하는데 반해, 전자현미경은 자석을 활용한 렌즈를 이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빛 알갱이든 전자든 모두 충돌 과정을 통해 물체의 존재 여부와 위치를 결정한다.

사과가 바이러스보다 훨씬 크긴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사과의 이미지를 찍는 것도 가능하다. 빛 알갱이 대신 전자가 사과에 부딪혀 반사되는 순간을 단순화시켜 살펴보자. 우선 전자 입자와 사과 입자 간에 충돌이 일어난다. 앞선 글 [공중부양이 가능하려면?]에서 논의한 힘과 가속도의 원리에 따라, 충돌하는 물체가 주고 받는 힘은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다. 그런데 여기서 사과는 전자에 비해 질량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사과의 움직임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대신 전자는 사과 표면에서 정반사되는 쪽으로 움직임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사과 표면에서 정반사되는 전자의 운동은 빛 알갱이가 정반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과적으로 전자현미경을 이용한 이미지는 광학현미경의 이미지와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다.

이미지를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물체나 입자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도 역시 충돌 실험이다.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어 그 이미지를 실제 확인하기가 힘들 뿐이지, 전자현미경에서 전자와 사과가 충돌하는 것처럼, 전자 대신 특정 입자를 이용하여 특정한 힘을 주고 받는 충돌 과정을 확인하면 새로운 입자의 존재를 밝힐 수 있다. 최근 존재가 확인된 힉스 입자도 유럽의 CERN 연구소에서 핵 입자를 높은 에너지로 가속하여 충돌시키는 실험을 통해 발견됐다.


CERNLHC 충돌실험을 통해 힉스 보존 입자를 발견하였다. <출처: CMS/CERN>


전자를 충돌시켜 원자의 모양을 알아보자


이제 그럼, 전자를 이용해 원자의 이미지를 찍는 과정을 상상해 보자. 간단히 생각하면 사과가 놓여 있던 자리에 원자 한 개를 올려 놓고 전자를 날려 보내 충돌시키면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과와 전자가 충돌할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우선 원자의 질량이 사과에 비해 턱없이 작아 전자의 질량을 무시할 수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원자의 구조에 있다. 원자에서 무거운 핵은 중심에 있고 그 주변을 가벼운 전자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전자가 원자와 충돌할 때, 실제 충돌하는 입자는 무거운 핵이 아니라 주변의 전자들이 되어버린다.

실제로 원자의 크기나 모양을 결정하는 것은 핵을 둘러싼 전자들이다. 그런데 측정을 위해 들여보낸 전자가 같은 크기의 질량을 가진 전자와 충돌하면, 그 둘이 서로 같은 힘을 주고 받고는 두 전자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튕길 것이다. 그러면 반사된 전자를 이용해 만든 이미지는 사과를 찍으면서 예상했던 ‘현미경’의 이미지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뿐 아니다. 전자를 충돌시켜 측정한 후에는 원자의 모습마저도 충돌 과정에서 흩어진 전자 때문에 원래의 모습과 같지 않게 된다. 전자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측정하면 전자와 전자가 충돌하면서 원자의 본래 상태를 흔들어 놓는다. 이렇게 전자를 충돌시키는데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면, 전자 대신 빛 알갱이를 사용해 측정하면 어떨까?

빛을 이용한 측정도 전자를 이용한 측정에 비해 결코 쉽지 않다. 가시광선 영역의 빛 알갱이는 파장이 400 나노미터부터 700 나노미터까지의 전자기파이기 때문에, 파장이 원자의 크기에 비해 수천 배 이상 크다. 사실 파동을 이용한 이미지 측정을 하려면, 빛의 파장이 측정 대상인 물체의 크기보다 작아야 한다. 사과의 이미지를 우리가 눈으로 보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은 사과의 크기가 빛의 파장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빛의 파장보다 작은 물체를 찍으려 한다면 물체에서 반사되는 빛의 양도 적을 뿐 아니라 반사된 빛을 이용해서는 물체의 모양을 구분할 수 조차 없다.

그렇다면 가시광선보다 훨씬 짧은 파장의 전자기파를 쓰면 어떨까? 규칙적으로 배열된 원자의 회절무늬로 원자 간 거리를 측정하는 데 사용했던 X-선 전자기파는 파장이 0.1나노미터보다 작아 원자 모양을 파악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X-선을 이용해 외떨어진 원자에 초점을 맞추면, X-선 빛 알갱이의 운동량이 상대적으로 너무 커서 X-선에 부딪힌 원자 주변의 전자가 튕겨 나가는 일이 벌어진다. 전자 대신, 원자 크기보다 작은, 짧은 파장의 전자기파를 이용하더라도 빛의 운동량이 너무 커서, 결국 전자를 이용해 이미지를 찍을 때와 같은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전자기파가 전자와 충돌하면서, 원자 주변의 전자가 튕겨 나가고 있다. <출처: (cc) Dirk Hünniger at wikimedia.org>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할 없다


결과적으로 빛을 이용하든 전자를 이용하든 원자 크기의 작은 입자는 그 모양을 제대로 측정하기가 어렵다. 원자 크기의 모양을 측정하기 어렵다는 말은, 사실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전자의 위치는 왜 파악하기 어려운 걸까?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려면 적당한 측정 도구가 필요하다. 우선 빛을 이용한 측정을 생각해 보자.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려면 빛의 파장은 짧을수록 좋다. 그러나 빛의 운동량은 파장에 반비례하여 커지기 때문에 짧은 파장의 빛을 쓰면, 빛과 전자가 충돌한 후 빛의 운동량 일부가 전자로 옮겨져 전자가 움직이게 된다. 반사된 빛으로부터 빛과 전자가 충돌했던 위치는 알 수 있지만, 전자는 이미 움직여 다른 위치에 있기 때문에 전자의 지금 위치는 파악할 수 없다. 반대로 충돌 과정에서 운동량 전달을 최소로 하려면 빛의 운동량을 작게 할수록 좋은데, 작은 운동량의 빛은 운동량에 반비례하여 파장이 길어진다. 전자 위치를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하느냐는 파장의 길이에 좌우되기 때문에, 충돌 후 전자의 움직임은 줄어들지 몰라도 파장의 길이가 늘어난 만큼 위치의 불확정성은 커져 버린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빛(녹색 선)이 전자(파란 점)와 충돌하여, 전자가 원래의 위치에서 약간(∆x) 움직이게 된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측정 도구의 정확도의 문제에 있다기보다는, “충돌이라는 속성을 갖는” 측정 과정 자체의 본질적인 성질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빛을 이용해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과정에 나타난 현상처럼,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하게 결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측정의 차원을 넘어 입자의 속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드러낸다. 측정 도구로 사용하는 빛 알갱이와 충돌했을 때, 빛의 운동량에 영향을 받을 정도의 질량을 가진 입자는 불확정성 원리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히 결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과의 위치나 운동량에 대한 뉴턴 시대의 개념은 물체를 대표하는 확정된 측정값인데 반해, 현대물리에서는 전자처럼 작은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그 위치나 운동량이 동시에 정해질 수 없다는 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나 사과와 같이 커다란 입자는 ‘측정된 물체’의 위치와 그 물체를 ‘대표하는 점’의 위치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전자처럼 작은 입자의 경우 그 위치가 정확히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하나의 입자가 두 개 이상의 위치에 동시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사실은 ‘입자’의 기본 개념에 어긋난다. ‘측정된 입자의 위치’가 그 물체의 ‘추상적인 점의 위치’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위치의 불확실성을 띤 전자의 속성은 오히려 공간에 퍼진 파동의 성질에 부합한다. 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띤다는 역설적인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불확실성의 원리는 입자로 인식하고 있던 전자가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이와 같이 20세기 이후 측정 기술의 발달은, 특정 위치의 점으로 대변되는 ‘입자’의 속성이 원자나 전자와 같이 작은 물체에는 적용될 수 없게 되면서, 고전적인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포함한 양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켰다. 다음 글에서는 입자와 파동 이중성에 대한 얘기를 하기로 하자.


'측정의 과학' 시리즈 보기 (3/3)

글  유재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고체물리학 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12년에 서울대 교육상을 수상했다. 과학은 자연과 인간의 대화이자 생각하는 방법임을 강조하며, 과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진짜 양자역학으로 스핀을 설명하자 스핀의 과학 22 - 진정한 양자역학의 탄생과 스핀

왼쪽부터 볼프강 파울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엔리코 페르미 <출처: ©CERN>


1925년에 이르러 유럽은 잠시 평화를 찾은 듯 보였다. 프랑스 군은 루르 지역에서 철수했고,

미국의 은행가 도스(Charles Gates Dawes, 1865-1951)는 독일의 배상금 삭감안을 제시했다.


눈에 띄게 정치적인 긴장이 완화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10월에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과 로카르노 조약을 맺고 국경에 대한 안전을 집단적으로 보장했다. 특히 벨기에,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국경선을 확인했고 라인란트는 계속해서 비무장지대로 남겨두었다. 그 반대급부로 독일은 다음 해에 국제연맹에 가입을 승인받았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프랑스 외무장관 아리스티드 브리앙(Aristide Briand, 1862-1932)과 독일 외무장관 구스타프 슈트레제만(Gustav Stresemann, 1878-1929)은 1926년의 노벨 평화상을 함께 수상했다.


양자역학의 탄생


잠시 잠잠한 듯 했던 원자물리학도 1925년에 폭발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배타원리가 제시되고 전자의 스핀이 발견되었다. 이제 원자 속 전자껍질의 상태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를 알게 되었고,

주기율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남은 것은 이 모든 것을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역학 이론이었다.

놀랍게도 그런 이론은 이미 탄생해 있었다. 과학의 역사는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가 회전하는 전자를 이야기하는 논문을 내놓은 1925년 하반기를 스핀의 시대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 시기는 하이젠베르크의 시간이다. 스핀이 등장했던 그해 가을에 파울리가 몰두하고 있던 일은 바로 그것이었다. 앞에서 잠시 이야기 했듯이, 이때 하이젠베르크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이론은 뉴턴 이래 가장 심오한 혁명을 가져오게 된다.

1925년 5월에 코펜하겐에서 괴팅겐으로 돌아가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하이젠베르크는 설상가상으로 6월에 접어들면서 꽃가루 때문에 만성적인 알러지성 비염이 심해져서 도저히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보른에게 이야기해서 휴가를 받은 하이젠베르크는 꽃가루를 피해 괴팅겐을 떠났다. 그리고 북해의 작은 섬 헬골란트에서 며칠을 혼자 지내며 원자를 생각했다. 거기서 하이젠베르크는 거의 계시라고 할 만한 방식으로 새로운 원자의 이론을 만들어냈다.


하이젠베르크가 머물렀던 헬골란트 섬 <출처: Pegasus2 at wikimedia.org>


하이젠베르크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물리량을 굳이 보려고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원자 속에서 전자의 위치나 궤도를 결정하려고 하지만, 이것들은 실험에서 실제로 측정하는 양이 아니다. 우리가 수립해야 할 이론은 관측할 수 있는 양들 사이의 관계가 나타나기만 하면 충분하다.

이 논문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원자를 주기적인 운동을 하는 1차원 조화진동자 모형으로 생각하고, 양자화가 되었을 때 고전역학과의 유비 관계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실제로 측정되는 양인 고유 진동수와 전이 진폭을 계산하는 일에만 관심을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자신도 잘 이해할 수 없는 계산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에 따라 관계식들을 유도해냈다. 그러자 최종적으로 고전역학의 방정식에 해당하는 양자역학의 식들을 얻을 수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훗날 이를 두고 “모든 원자현상의 표면 밑에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내적인 의 근거를 바라보는 그러한 느낌이었다.”라고 표현했다.1)

이 새로운 이론을 하이젠베르크가 제일 먼저 알린 사람은 역시 계속해서 편지로 서로의 연구에 대해 토론을 나누던 파울리였다. 파울리는 자신을 원자의 물리학으로 이끈 사람일 뿐 아니라, 당대의 원자 물리학에 정통해서 이 이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정확한 평가를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이고, 또 자신에게 기탄없이 해야 할 말을 해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논문을 받고, 놀랍게도 파울리는 “새로운 희망, 새로운 삶의 기쁨”이라고 말할 정도로 기쁨에 들떴다!

하이젠베르크는 괴팅겐에 돌아와서 보른과도 자신의 결과에 대해 논의했다. 보른은 논문 자체에 대해서는 어리둥절했지만 하이젠베르크를 격려해서 논문을 쓰도록 했고, 본인도 곧바로 후속 연구를 시작했다. 이때 보른이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아인슈타인에게 보낸 7월 15일자 편지에서 알 수 있다.2)

곧 발표될 하이젠베르크의 논문은 당혹스럽지만 확실히 틀림이 없으며 심오합니다.

편지에 적은 것은 단 한 줄이었지만 훗날 편지를 모은 서한집을 펴내며 보른은 주변 상황을 자세히 소개했다.3)

하이젠베르크는 7월 11일 아니면 12일에 내게 그 원고를 주었는데 ... 그는 나에게 논문의 내용이 괜찮은지 그리고 발표해도 괜찮은지를 물었다. ... 이 논문이 담은 내용은 당혹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것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확신은 하이젠베르크가 행한 훌륭한 계산이 실제로는 잘 알려진 행렬 계산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이 잘 모르는 수학에 익숙했던 보른은 행렬이라는 수학적 형식도 알고 있었다. 이를 이용해서 보른은 하이젠베르크의 계산에 살을 붙이고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게 된다. 또한 이제는 양자화 조건으로 잘 알려진 라는 식을 유도해냈다.

하이젠베르크의 첫 논문은 “운동학과 역학적 관계의 양자역학적 재해석”이라는 제목으로 7월에 발표되었다. 이 논문은 흔히 이전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그 무엇을 탄생시킨 ‘마술적인 논문’이라고 여겨진다. 197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 1933-)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4)

나는 그 논문을 여러 차례 애써 읽어 보았고 내가 양자 역학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논문에서 수학적 논리 전개를 왜 그런 식으로 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론 물리학자들은 자신의 가장 성공적인 업적에서 두 가지 역할 중 하나를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현인이나 마법사. ... 현인형 물리학자들의 논문을 이해하는 것은 대개 어렵지 않지만 마법사형 물리학자들의 논문은 종종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하이젠베르크의 1925년 논문은 마법 그 자체였다.

 

에른스트 파스쿠알 요르단


그해 말까지 보른은 또 다른 학생 요르단(Ernst Pascual Jordan, 1902-1980)과 함께 한 편, 그리고 하이젠베르크까지 세 사람이 함께 또 한 편, 새로운 역학체계를 구축하는 논문을 완성했다. 이들의 이론은 행렬역학(matrix mechanics)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당시 하이젠베르크의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이상한 이론과 낯선 수학에 어리둥절해할 뿐이었다.

새로운 이론을 가지고 처음으로 중요한 결과를 보여준 사람은 바로 파울리였다.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의 논문이 발표될 무렵 파울리는 하이젠베르크의 계산 규칙을 가지고 수소 원자의 선 스펙트럼을 계산하고 있었다. 파울리의 논문은 정확한 물리적 이해와 교묘한 수학적 기법이 동원되어 발머 계열 스펙트럼 뿐 아니라 슈타르크 효과까지 정확하게 계산해냈다. 이듬해 1월 발표된 파울리의 논문에 누구보다도 놀란 사람은 하이젠베르크였다.

1926년 초에는 취리히 대학의 에르빈 슈뢰딩거도 새로운 역학을 들고 나타났다. 슈뢰딩거의 역학은 새로운 형태의 파동 방정식으로 나타났으므로 파동역학이라고 불렸다. 슈뢰딩거의 역학은 빛을 전자기장으로 기술하는 것과 비슷하게, 전자라는 입자를 파동으로 표현한다. 이 점을 제외하면, 슈뢰딩거의 이론은 다른 물리학 이론과 비슷하게 미분방정식으로 되어 있었으므로 많은 물리학자들에게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보다 훨씬 더 환영을 받았다. 울렌벡은 “슈뢰딩거 방정식은 마치 구세주처럼 다가왔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 괴상한 행렬 수학을 배우지 않아도 되었으니까“라고 말했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슈뢰딩거 방정식을 여러 원자에 적용해서 원자의 다양한 성질들을 계산해냈다.

원자물리학은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에르빈 슈뢰딩거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은 수학적인 형식이나 이론의 해석까지도 완전히 다른 이론처럼 보였으므로, 이 두 이론 체계가 둘

다 원자에 대해 옳은 답을 준다는 것은 처음에는 아주 기이하게 보였다. 그러나 슈뢰딩거는 곧 두 이론이 완전히 동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울리와 미국의 에커트(Carl Henry Eckart, 1902-1973)도 역시 두 이론의 동등성을 확인했다. 즉 두 이론은 하나의 이론을 하나는 행렬이라는 형태로 표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분방정식이라는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어느 쪽을 택해도 문제를 올바르게 풀 수 있다.

한편 하이젠베르크는 1925년 7월에 새로운 이론에 대한 첫 논문을 발표하고 영국으로 가서 케임브리지에서 강연을 했다. 이때 하이젠베르크가 만난 사람 중에 젊은 이론물리학자 폴 디랙(Paul Adrien Maurice Dirac, 1902-1984)이 있었다. 디랙은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을 공부하고 나서 괴팅겐과 독립적으로 을 포함한 양자역학 논문을 발표해서 보른을 대경실색하게 만들었다. 당시까지 몇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디랙은 거의 완전히 무명에 가까웠기에 사람들은 더욱 놀랐다. 디랙은 1926년 5월에 박사학위를 받고, 그 해 9월부터 코펜하겐의 보어 연구소를 방문해서 6개월간 머물렀다. 거기서 디랙은 그의 양자역학 체계를 완성했는데, 이 이론은 흔히 변환 이론(transformation theory)이라고 불린다. 물론 이 모든 이론은 동등하지만, 현재 물리학자들의 머릿속에 있는 양자역학은 여러 가지 기호나 수학적 도구 등을 볼 때 디랙의 것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폴 디랙


이렇게, 순식간에 진짜 양자역학이 탄생했다. 보어와 조머펠트,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시작된 여러 아이디어와, 원자에 대한 수많은 실험 데이터들, 이들을 설명하고자 했던 수많은 시도와 노력이 1925년과 1926년에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이때부터 물리학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이 진짜 양자역학으로 스핀을 설명해야 한다.


파울리의 스핀 이론


기본적인 선 스펙트럼과 슈타르크 효과는 새로운 양자역학으로 곧 계산할 수 있었지만 비정상 제이만 효과나 여러 개로 갈라지는 스펙트럼의 다중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스핀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새로운 양자역학의 체계 안에 스핀을 도입해야 했다. 제일 먼저 새로운 양자역학을 스핀에 적용한 사람은 하이젠베르크였다. 하이젠베르크는 1926년 요르단과 함께 행렬역학으로 미세구조, g-인수, 비정상 제이만 효과 등을 계산했다.

다음 해 파울리는 디랙의 변환 이론을 가지고 슈뢰딩거 방정식에 스핀을 도입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파울리의 방법은 스핀을 다루는 표준적인 방법이 되어, 훗날 더 근본적인 스핀 이론이 나오는 길을 예비해 주었다.

파울리의 이론의 수식을 다 소개할 수는 없으므로, 여기서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만을 보이도록 하자. 파동역학에서 전자의 양자역학적 상태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서 나온 답인 파동함수에 모두 들어있다. 파울리는 이 파동함수, 혹은 양자상태가 스핀을 가지도록 확장했다. 이때 전자의 스핀은 두 가지 상태만을 가지므로, 새로운 파동함수는 다음과 같이 확장되어 표현된다.

\psi (\overrightarrow { x })\to \psi (\overrightarrow { x },\combi _{ z }{ s })

여기서 는 스핀의 상태를 가리키며 +(1/2)과 -(1/2)의 두 값을 갖는다. 따라서 두 개의 파동함수 가 있는 셈이다. 이 두 파동함수는 의 값을 제외하면 다른 것은 모두 같아야 한다.

이제 슈뢰딩거 방정식을 스핀이 관계하는 상호작용까지 포함하도록 확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파울리는 다음 세 행렬을 도입했다.

\combi _{ x }{ \sigma  }=\begin{ pmatrix }{ 0 }&{ 1 }\{ 1 }&{ 0 }\end{ pmatrix },\combi _{ y }{ \sigma  }=\begin{ pmatrix }{ 0 }&{ -\quad i }\{ i }&{ \quad \quad \quad 0 }\end{ pmatrix },\combi _{ z }{ \sigma  }-\begin{ pmatrix }{ 1 }&{ \quad \quad \quad 0 }\{ 0 }&{ -\quad 1 }\end{ pmatrix }

지금 우리는 이 행렬들을 “파울리 행렬”이라 부른다. 스핀에 해당하는 각운동량의 성분은 파울리 행렬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combi _{ x }{ s }=\frac { 1 }{ 2 }\combi _{ x }{ \sigma  },\combi _{ y }{ s }=\frac { 1 }{ 2 }\combi _{ y }{ \sigma  },\combi _{ z }{ s }=\frac { 1 }{ 2 }\combi _{ z }{ \sigma  }

이제 스핀 와 자기장의 상호작용 항을 슈뢰딩거 방정식에 도입하면 된다. 그러면 앞에서 확장한 두 파동함수는 다음과 같이 하나의 벡터로 쓸 수 있다.

\psi =\begin{ pmatrix }{ \psi (\overrightarrow { x, } }&{ +\quad 1/2) }\{ \psi (\overrightarrow { x, } }&{ -\quad 1/2) }\end{ pmatrix }

행렬 계산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위의 스핀 이 이 벡터 파동함수에 작용하면 각각 파동함수의 값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combi _{ z }{ S }\psi =\frac { 1 }{ 2 }\begin{ pmatrix }{ 1 }&{ \quad \quad \quad 0 }\{ 0 }&{ -\quad 1 }\end{ pmatrix }\begin{ pmatrix }{ \psi (\overrightarrow { x, } }&{ +\frac { 1 }{ 2 }) }\{ \psi (\overrightarrow { x, } }&{ -\frac { 1 }{ 2 }) }\end{ pmatrix }=\begin{ pmatrix }{ +\frac { 1 }{ 2 }\psi (\overrightarrow { x, } }&{ +\frac { 1 }{ 2 }) }\{ -\frac { 1 }{ 2 }\psi (\overrightarrow { x, } }&{ -\frac { 1 }{ 2 }) }\end{ pmatrix }

여기서 두 성분을 가지는 두 개의 파동함수를 하나로 쓴 는 사실 3차원 공간에서 회전을 나타내는 대칭성을 표현하는 한 형태다. 이 표현 형태를 스피너(spinor)라 부른다.

이제 파울리가 도입한 스핀 상호작용 항과 스피너를 이용해서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면 비정상 제이만 효과와 다중항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파울리는 이 이론이 완벽한 것이 아니라 잠정적인 것이라고 벌써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신이 도입한 스핀은 공간 3차원에 해당하는 것 뿐이므로 특수 상대성 이론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이 서로 얽히게 된다. 따라서 이 스핀 이론은 지금 이 상태로는 특수 상대성 이론에 맞게 확장할 방법이 없다. 파울리는 이 과제에 대해서도 고민했으나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의 재해석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앞에서 보았던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자.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은 양자 효과를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곧바로 보어의 양자 이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인정을 받았다. 보어는 물론 조머펠트, 아인슈타인, 제임스 프랑크, 파울리 등이 모두 이 실험에 찬사를 보냈다.

슈테른-게를라흐 실험 <출처: ©Crondon.com>


그런데 이 실험을 깊이 들여다보니, 의외로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아인슈타인과 에른페스트가 계산을 해보았더니 자기장과 원자의 상호작용은 원자의 자기 모멘트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들의 실험에서 사용한 원자 빔의 밀도와 자기장을 가지고는 원자가 정렬하는데 100년도 더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게를라흐가 나트륨 기체를 가지고 후속 실험을 계속 해봐도 빔이 갈라지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함부르크 대학에서 슈테른의 연구원이었던 프레이저(Ronald Fraser)가 1927년에 수소, 나트륨, 은 원자가 바닥상태일 때 각운동량은 0이고, 따라서 자기 모멘트도 0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렇다면 대체 원자 빔은 왜 갈라지는 것인가? 물론 이때쯤에는 사람들은 답을 알고 있었다. 이 실험에서 빔이 갈라진 원인은 전자의 스핀 때문이었다. 전자의 스핀 때문이라면 아인슈타인과 에른페스트의 계산도 쉽게 이해가 된다. 자기장에 의해 원자가 정렬하기는 어렵지만, 스핀이 자기 모멘트의 원인이라면 전자만 정렬하면 되기 때문에 훨씬 쉽게 빔이 갈라진다.

앞에서 말한 대로 지금 모든 양자역학 교과서에서는 전자의 스핀의 직접적인 증거로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을 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스핀이 발견되었을 때에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을 스핀과 곧 관련지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공간의 양자화로는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다들 양자역학을 새로 공부하기에 바빠서 그랬을까? 참으로 “과학의 기묘한 수수께끼”라고 할 만한 일이다.5)


이강영 |경상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입자물리학 이론을 전공하여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물질의 근본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LHC 현대물리학의 최전선], [보이지 않는 세계], [파이온에서 힉스 입자까지]를 썼다. 현재 경상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완성된 원자 속 풍경 스핀의 과학 21 - 스핀!

팽이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는 볼프강 파울리(왼쪽)과 닐스 보어, 1954년 스웨덴 룬드


1925년 여름, 울렌벡은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호우트스미트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제이만의 조수로 일하고 있던 호우트스미트는 일주일 중 3일은 암스테르담에서 제이만과 보냈고,

나머지 시간에는 레이든에 돌아와서 울렌벡을 가르쳤다.


호우트스미트와 울렌벡


울렌벡이 호우트스미트에게 배운 것은 조머펠트의 미세구조라든가, 비정상 제이만 효과에 대한 란데의 이론, 파울리의

배타 원리와 새로운 양자 수에 이르기까지 원자에 대한 지식을 망라했다. 이론물리학 전반에 대해서는 울렌벡이 호우트스미트보다 더 잘 알고 있었지만, 울렌벡은 원자의 스펙트럼에 관한 최신 이론은 알지 못했고 물리학 연구를 해 본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호우트스미트는 이미 10편이 넘는 논문에 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었고 이 분야의 전문가들과도 교류가 있었다. 하지만 호우트스미트가 물리학을 대하는 자세도 좀 극단적인 것이었다. 호우트스미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1)

나는 뭐가 어렵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경험법칙이 있으면 그 사이의 역학을 찾아내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울리의 원리가 나왔을 때에도 내게는 양자 수를 정하는 일이나 선택 규칙과 같은 경험법칙이 하나 더 생긴 것 이상은 아니었다. 좀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경험법칙일 뿐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대화는 다소 널뛰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호우트스미트가 언급하는 란데나 파쉔, 하이젠베르크 같은 이름을 울렌벡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하다가 울렌벡이 네 번째 자유도에 대해서 말하면 호우트스미트는 “자유도가 뭐야?”하고 되묻는 형편이었다. 바꿔 생각하면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를 훌륭하게 보충해 주는 것이었고, 에른페스트가 노린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울렌벡은 이렇게 회상한다.2)


1926년 여름, 오스카르 클라인(왼쪽)과 울렌벡(가운데), 호우트스미트


에른페스트는 샘(호우트스미트를 말한다)에게 나를 가르치라는 과제를 주었다.

그것은 에른페스트의 교육 원리 중 하나였다. 에른페스트는 늘 사람들을 짝을 지어서 함께 일하도록 하려고 했다. ... 그래서 6월부터 그해 여름에, 내 기억에 따르면 우리는 매주 두 번 헤이그에서 만났다. 그 외의 날에는 나는 레이든에 가서 에른페스트와 다른 연구를 시작했다. 그것 역시 내가 관심이 많던 파동방정식의 성질과 편미분 방정식 같은 것이었다.

호우트스미트도 울렌벡을 가르칠 때 울렌벡이 묻는 기초적이고 비판적인 질문의 답을 생각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단순한 관점을 넘어서 원자 이론에 대해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되었다.


스핀의 발견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곧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8월이 가기 전에 조머펠트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던 이온화된 헬륨의 스펙트럼 선을 설명하는 소논문을 하나 썼다. 이에 고무되어 두 사람은 더욱 최신의 결과들에 대해 공부했다. 특히 파울리의 배타원리와 네 번째 양자 수의 수수께끼에 집중해서 연구했다. 호우트스미트가 이에 대해 설명하자, 울렌벡은 곧 파울리의 네 번째 양자 수는 새로운 물리적 자유도를 의미하며, 이는 일종의 내재된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재된 움직임이란 과연 무엇일까? 1925년 9월의 어느 날, 울렌벡은 이 움직임을 전자의 역학적인 자유도와 관련지어 보았다. 통계물리학에 정통한 울렌벡에게 그런 움직임을 생각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울렌벡은 곧 이는 전자의 자전에 해당하며, 따라서 네 번째 양자 수는 그에 따른 각운동량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러자 호우트스미트는 곧 전자의 자전에 따른 각운동량이 ½라고 하면 모든 것이 잘 맞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긴 했지만, 두 사람은 아직 물리학 연구에서는 풋내기였기 때문에, 논의를 더 진전시키지 못했다. 이런 결과만 가지고도 논문을 쓸 수 있나? 어디에 잘못된 데는 없을까? 너무 불확실한 이론 아닐까? 그래서 그들은 논문을 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들은 에른페스트는 연구를 더 진전시키도록 두 사람을 격려하고, 막스 아브라함(Max Abraham, 1875-1922)의 오래된 논문을 한 편 소개해 주었다. 이 논문은 전자를 표면에 고르게 전하가 분포된 고전적인 구체로 생각하고, 전자가 회전할 때 생기는 자기 모멘트 등 여러 가지 성질을 논한 것이었다. 울렌벡이 이 논문을 공부해서 그들의 이론에 적용시켜 보았더니 g-인수의 값이 2가 나왔는데 이는 실험과 맞는 결과였다. 이 보고를 들은 에른페스트는 네덜란드 학술지인 [자연과학(Naturwissenschaften)]에 실을 짧은 논문을 쓰라고 하고, 로렌츠에게도 보여주라고 덧붙였다.



전자의 회전에 의해 자기장이 형성된다. 회전 방향에 따라 각운동량을 각각 +½, -½라고 한다.


울렌벡은 10월 19일에 로렌츠의 월요일 강의가 끝나자 로렌츠에게 논문을 보여주고 조언을 구했다. 로렌츠는 친절하게 흥미를 보이며, 돌아가서 좀 읽어보고 다음 주에 이야기하자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 월요일에 로렌츠는 계산을 잔뜩 한 종이뭉치를 들고 왔다. 이런 식으로 학생이 제기한 문제라도 진지하게 대하고, 고전물리학의 깊은 이해와 통찰을 바탕으로 답을 해주는 것이 로렌츠의 방식이었다. 로렌츠는 후일 이 결과를 코모 학회에서 발표했는데, 이것이 로렌츠의 마지막 논문이 되었다.

로렌츠가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울렌벡은 뭔가 문제가 많구나 하고 직감했다. 로렌츠는 고전 전자론에 입각하여 여러 가지를 지적했는데, 예를 들어 전자가 실제로 회전을 한다면 전자 표면의 속도는 빛의 속도의 10배에 이르러야 했다. 또한 자기 에너지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로렌츠의 조언을 들은 후 두 사람은 아무래도 이 논문은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여겨서 에른페스트에게 가서 논문을 게재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에른페스트는 놀랍게도 그 논문은 벌써 투고했으며 곧 출판될 것이라고 말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자네들은 젊으니까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좀 해도 괜찮아.” 당사자인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는 어이가 없었겠지만, 이런 말을 해준다는 것을 보면 과연 에른페스트가 얼마나 훌륭한 선생인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이 논문에서 에른페스트는 저자의 순서를 알파벳 순서대로 하지 않고 울렌벡을 앞에 오게 바꾸었다. 이에 대해서 호우트스미트는 “나는 이미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한 사람이라서 독자가 내 이름만 기억하고 울렌벡의 이름이 무시될까봐 에른페스트가 염려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스핀을 생각해낸 것은 울렌벡이었으니까.”라고 말했다.3)


닐스 보어(왼쪽)와 파울 에른페스트, 그리고 그의 아들


해결하지 못한 숫자, 2


전자의 회전을 제안한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의 논문은 1925년 10월 17일에 투고되어 11월 20일자로 출판되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논문이 발표된 바로 다음날 괴팅겐에서 하이젠베르크가 호우트스미트에게 편지를 썼다. 두 사람은 이전부터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하이젠베르크는 편지에서 수소의 미세구조 이중선의 간격이 2배 차이가 나는 것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물었다. 그런데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이중선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았고, 사실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얼마 후에 레이든을 방문한 아인슈타인에게 배우고 나서야 하이젠베르크가 한 말을 겨우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의 논문이 그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설명하지 못하는 점이 있긴 했어도, 이 논문은 그 해 가을 원자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화제였다. 그러나 정작 파울리는 여전히 전자가 회전한다는 데 부정적이었다. 그 해 12월 11일에 레이든에서 로렌츠의 박사학위 50주년을 기념하는 모임이 열렸다. 보어는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레이든에 가는 도중에 기차가 함부르크 역에 정차한 틈을 타서 파울리를 만났다. 파울리와 슈테른은 보어가 스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기 위해 역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보어는 “매우 흥미롭다(Very interesting)”고 말했는데, 이것은 전혀 흥미가 없거나 믿을 수 없을 때 보어가 늘 하는 표현이었다. 파울리는 보어에게 레이든에 가면 전자가 회전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했다.

보어는 레이든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났다. 과연 아인슈타인의 첫 마디도 자전하는 전자를 믿느냐는 것이었다. 보어는 역시 매우 흥미롭다고 말하고는, 특히 원자핵의 전기장만 있고 자기장이 없는데 전자가 어떻게 미세구조를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전자가 정지해 있는 좌표계에서 보면 특수 상대성 이론의 효과로 회전하는 전기장이 자기장도 만들어 낸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는 새로운 각운동량과 기존의 각운동량이 결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보어는 두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1925년 에른페스트의 집에서, 닐스 보어(왼쪽)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파울리가 우려한대로, 레이든에서 보어는 회전하는 전자의 예찬자가 되어 버렸다.

보어는 주인공인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전적인 전자론에서 나타나는 모순에 대해 “당연히 이것은 고전적인 것이 아니므로, 고전역학의 맥락에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며 로렌츠의 지적을 일축했다. 4)그자신의 표현대로 “전자-자기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이다. 5)


보어는 코펜하겐으로 돌아가는 길에 괴팅겐을 거쳐 베를린에 가서 12월 18일에 열린 독일 물리학회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괴팅겐 역에서는 하이젠베르크와 요르단이 보어를 만나러 나왔다. 보어는 그들에게도 전자의 회전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베를린에서는 파울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파울리에게 전자-자기 복음을 전하는 데는 역시 실패했다. 파울리의 반응은 “새로운 코펜하겐의 이단(Copenhagen heresy)이군요”라는 것이었다.


토머스 팩터


보어의 영향력에 힘입어 전자의 회전이라는 개념은 빠르게 퍼졌다.

보어는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에게 [네이처]에 보낼 소논문을 쓰도록 하고 자신도 그 내용을 지지하는 논평을 써서 소논문 뒤에 붙였다. 이 논문에서 이들은 전자의 자전을 제안하고 이로부터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 선을 다시 계산해 보였다. 그들의 결과는 조머펠트가 계산한 스펙트럼 선을 완전히 재현했고, 조머펠트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도 일부 설명할 수 있었다. 이 개념에 스핀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보어다.


왼쪽은 수소 원자 모델에서 조머펠트 이론으로 계산한 스펙트럼 선이다. 가운데 점선은 스핀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의 에너지 준위이고, 스핀을 고려하여 계산한 에너지 준위가 오른쪽이다. 스핀에 의해 에너지 준위가 2개로 나뉘었다.


회전하는 전자가 완전히 받아들여지는데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로렌츠가 고전 전자론을 통해 지적한 것이 아니었다.

보어의 말대로 그것은 고전 이론의 입장이며 양자 이론에서는 그것이 정말 문제인지도 불명확했다. 그보다 문제가 된 것은 전자의 스핀에 의해 생기는 수소 스펙트럼 이중선의 간격을 계산하면 실험값과 2배의 차이가 난다는 점이었다. 크로니히가 처음 계산했을 때에도, 그리고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의 연구에서도 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 파울리가 전자의 스핀 이론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주된 근거도 이 부분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전혀 뜻밖의 인물이었다. 코펜하겐의 보어 연구소에 방문하고 있던 스물 두 살의 학생 르웰린 토머스(Llewellyn Hilleth Thomas, 1903-1992)가 그 주인공이었다.

토머스는 케임브리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박사과정에 들어온 뒤 아이작 뉴턴 학생으로 선발되어 1925년 가을에 코펜하겐에 왔다. 1925년에서 1926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토머스는 보어와 크라메르스와 함께 세미나를 하면서 전자의 스핀이 있을 때 이중선 간격이 2배가 되는 문제를 배웠다. 보어의 설명을 들은 후 토머스는 사람들이 상대성 이론의 효과를 완전히 계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에딩턴 경의 일반 상대성 이론 강의를 들어서 이에 익숙했다. 토머스는 에딩턴 경의 [상대성 이론의 수학] 책을 들고 문제를 면밀히 검토해 보고는 불과 사흘 만에 해답을 찾아냈다. 보통 이 문제는 원자핵이 멈춰있고 전자가 주위를 돌고 있는 좌표계를 전자가 멈춰있고 원자핵이 움직이는 좌표계로 변환해서 계산을 하게 되는데, 지금까지는 이를 가속 운동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토머스는 복잡한 계산을 통해 좌표축 자체가 회전하는 좌표계를 정하고, 이를 통해서 g-인수가 2일 때 (½)이 더 곱해짐을 유도해냈다. 이를 토머스 인수(Thomas factor)라 부른다. 이로써 이중선의 간격이 2배 크게 계산되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르웰린 토머스


토머스는 그의 결과를 [네이처] 1926년 2월호에 우선 발표하고, 상세한 계산을 담은 논문은 1927년 1월에 [필로소피컬

매거진]에 게재했다. 보어는 이 결과에 즉시 만족을 표했다. 하이젠베르크도 요르단과 함께 토머스의 결과를 가지고 수소 스펙트럼 선의 미세구조와 비정상 제이만 효과를 만족스럽게 설명해냈다. 여러 다른 경우에도 전자의 스핀 효과를 적용해서 성공적인 결과가 나왔다. 전자가 스핀을 가지고 있다는 데 이제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았다.

파울리만이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다. 심리적인 저항이 그토록 컸던 것일까. 파울리는 토머스의 계산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몇 주일이나 검토를 반복했고, 결국 토머스의 계산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승복했다. 1926년 3월 12일자로 보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파울리는 “이제 제게 남은 일은 무조건 항복 뿐입니다”라고 써서 스핀을 받아들였음을 알렸다. 파울리는 다음날 호우트스미트에게도 “내가 틀렸고 상대성 이론의 효과가 완전히 옳다는 확신에 도달했음을 알립니다”라고 적은 편지를

보냈다.

이로서 마침내 전자의 네 번째 양자 수가 확정되었다. 전자의 스핀은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가지고 원자 속의 풍경을 그리는 데 마지막 남은 빈자리였고, 보어의 표현에 의하면 ‘원자 이론의 슬픔의 끝(the end of the sorrows of atomic theory)'이었다.


스핀의 발견 이후 파울리와 크로니히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는 1927년 같은 날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에른페스트가 졸업식에서 지도교수가 하게 되어있는 연설을 두 번 하고싶지 않다고 해서, 관행을 벗어나지만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두 사람은 학위를 받고 같이 미국 미시간 대학에 가도록 정해져 있었다. 이것 역시 에른페스트의 솜씨였다. 그들의 자리는 당시 미시간 대학에서 2년간 근무했던 오스카르 클라인(Oskar Benjamin Klein, 1894-1977)의 후임이었다. 두 사람은 자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크게 안도했다.


제자들을 열성적으로 지도한 탁월한 선생, 파울 에른페스트


그러면 크로니히는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 자신이 몇 달 먼저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들의 것이 되어 각광을 받는 것을 본 크로니히는?

크로니히는 1926년 3월 코펜하겐의 크라메르스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신이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보다 먼저 스핀 개념을 생각해냈고, 그 후 코펜하겐에서 보어와 크라메르스와 함께 그 문제를 토의한 것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파울리의 강한 비판 때문에 자신이 그 내용을 발표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는 나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하고 다른 사람의 판단은 믿지 않을 것”이라는 씁쓸한 후회를 표했다. 크라메르스는 보어에게 이 편지를 보였고, 보어는 크로니히에게 “놀라움과 깊은 유감”을 표했다. 크로니히는 다시 답장에서 “언제나 자기 의견이 옳다는 확신에 차 있어서 잘난 체 하며 우쭐대는 물리학자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어서” 편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 정도가 크로니히가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정도에서 자신을 수습할 수 있었던 크로니히는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에게는 잘못이 없음을 잘 안다면서, 그들이 언짢아하지 않도록 이 일을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훗날 울렌벡과 호우트스미트도 이 일을 알게 되자, 그들은 크로니히가 자신들보다 몇 달 먼저 스핀을 생각해냈으며, 파울리 때문에 발표를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인정했다. 훌륭한 인품을 지닌 세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국 스핀의 발견에 노벨상이 수여되지 않은 것은 이 복잡한 관계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하긴 호우트스미트는 훗날 “노벨상보다 미시간 대학의 자리가 더 기뻤다”라고 말하기는 했다.

그러면 파울리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토머스는 이 사건에 대해 호우트스미트에게 “신의 무오류성이 지상의 교구에까지 미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농담을 했다. 아무리 파울리가 뛰어난 물리학자라도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는 것이다. 파울리는 크로니히에 대해 일종의 죄책감을 느꼈다. 반드시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1928년 취리히의 연방공과대학(ETH)에 교수로 부임했을 때, 파울리는 크로니히에게 자신의 첫 번째 조수 자리를 제안했다. 그때쯤에는 크로니히도 마음을 어지간히 추슬렀는지 파울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파울리가 조수가 된 크로니히에게 처음 한 말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반박을 해 주게”였다고 한다.

그러나 보어는 훗날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히 말했다 “크로니히가 어리석었다.” 자신의 연구를 발표하지 않은 책임은 그 자신의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물리학자들은 종종 이렇게 냉정하다.



우리는 얼마나 작은 물체까지 잴 수 있을까? 측정의 과학(1) - 중력파 관측

두 개의 블랙홀이 부딪치는 모습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시뮬레이션하였다. <출처: LIGO Caltech>


2016년 2월 11일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는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중력파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지구로부터 약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태양 질량의 29배와 36배인 블랙홀 두 개로 이뤄진 쌍성이 충돌하였고, 그 과정에서 태양의 3배 가까운 질량의 에너지가 수분의 1초 사이에 방출되었다. 블랙홀 주변의 시공간이 찌그러지고 그 여파는 우주 공간으로 퍼져나갔다. 이 중력파는 세계협정시(UTC) 2015년 9월 14일 오전 9시 51분 지구를 통과하면서 LIGO의 측정 장치에 그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중력파 측정, 지구와 달 사이에서 수소 원자 하나를 찾아내다

간접적인 관측이기는 하지만 중력파의 존재는 1974년에 조셉 테일러와 러셀 헐스에 의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중성자별 주변을 도는 펄서의 자전주기와 펄스 방출주기를 정밀하게 측정하여 펄서 궤도의 축소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예측한 중력파에 의한 에너지 방출과 일치함을 보였다. 테일러와 헐스는 이 업적으로 199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40년 전에 이미 그 존재가 확인됐던 중력파에 대한 직접적인 관측이 2016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LIGO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15개국, 90개 이상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1000명 이상의 과학자가 참여한 프로젝트다. 이 연구 수행을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연구비가 투입되었다. 중력파 관측을 위해 이렇게 막대한 인력과 지원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중력파 측정을 위해서는 \frac { 1 }{ \combi ^{ 19 }{ 10 } } 만큼 작은 흔들림을 감지하는 정밀한 측정장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흔들림은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에서 수소 원자 크기보다 작은 길이의 차이에 불과하다.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하느냐는 눈금이 얼마나 촘촘하느냐의 문제

중력장 측정에 필요한 정밀도를 얘기하기 전에 우리 주변의 길이 측정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요즘은 병원이나 체력단련실에 가면 키와 몸무게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신장체중측정기를 흔히 볼 수 있다. 보통 키를 잰 결과가 0.1센티미터 단위로 나오지만, 허리를 펴고 숨을 들이쉰 채로 재면 0.5센티미터 정도는 쉽게 바뀌기도 한다. 키가 170센티미터인 사람의 키를 잰다고 하면 아무리 정확히 잰다고 해도 신장측정기의 정밀도는 기껏해야 300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중력파 측정에 필요한 \frac { 1 }{ \combi ^{ 19 }{ 10 } } 에 비하면 어림도 없는 값이다. 그렇다면 자의 정밀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인형의 정확한 키는 얼마일까? <출처: (cc) David Wright at flickr.com>


길이 측정의 오차는 자의 눈금에 달려있다. 사과를 반쪽으로 자른 후, 지름을 측정한다고 해보자. 0.1센티미터 단위로 눈금이 표시된 자를 이용해 한쪽에 ‘0’ 점을 잘 맞춘 후, 반대편 눈금을 읽으려고 하는데 하필이면 15.3센티미터와 15.4센티미터 사이에 걸쳐있다. 이럴 때 사과의 지름은 보는 사람에 따라 15.3센티미터, 15.4센티미터, 또는 15.35센티미터로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측정 결과들은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더 정밀한 측정도 하지 않았으면서 15.3323센티미터라고 주장한다면 15.3 이하의 숫자 “323”에 대해서는 신뢰를 얻기 힘들다. 눈금의 간격이 0.1센티미터이기 때문에 그 이하의 정확성을 주장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눈금이 어떻게 매겨져 있느냐에 따라 길이의 정밀도가 달라진다. <출처: TNS Sofres at flickr.com>


눈으로 볼 수 있는 눈금은 한계가 있다

버니어 캘리퍼스 <출처: Joaquim Alves Gaspar at wikimedia.org>


측정의 오차를 줄이고 정확도를 높이려면 자의 눈금을 촘촘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우선 눈금선의 두께가 너무 가늘거나 눈금선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으면 맨눈으로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눈금 간격이 겹치지 않도록 어미자와 아들자를 이용해 정밀하게 눈금을 구분한 버니어 캘리퍼스는 0.05밀리미터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0.05밀리미터는 사람 머리카락 두께와 비슷한 길이로 맨 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한계이기도 하다.

맨눈의 한계는 현미경을 이용하면 넘을 수 있다. 현미경의 대물렌즈에 10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눈금을 새겨 넣으면 박테리아나 세포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미경을 사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가시광선 영역의 빛의 파장보다 작은 0.5마이크로미터 이하의 길이는 광학현미경으로는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맨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가시광선 파장의 길이 0.5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눈금으로 자를 만들어 사람의 키를 측정한다 해도 그 정밀도는 1백만 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중력파를 관측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미흡한 정밀도다.


현미경 대물렌즈의 눈금을 이용한 측정 <출처: Ron Pastoring at wikimedia.org>


길이의 표준은 미터 원기가 아니라 빛이 움직인 거리

자에 눈금을 그어 길이를 측정하는 것은 미터 원기를 길이의 표준으로 정하는 방식에 대응된다. 길이를 재기 위해 눈금의 표준을 사용하는 것이다. 한편 앞선 글 [킬로그램 원기는 다이어트 중]에서 빛의 속력이 일정하다는 것에 근거해 길이의 표준을 “빛이 진공에서 1/299,792,458초 동안 진행한 거리”로 정의한다고 했다. 길이의 표준이 막대나 자의 눈금이 아니라 빛이 움직인 거리로 정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빛이 움직인 거리를 측정하기란 쉽지 않다. 빛의 속력은 일상적으로 다루기에는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길이의 표준을 정하면서 우리는 빛의 속력이 일정하다는 점을 이용했다. 그리고 빛은 파동의 성질을 갖고 있다. 인간의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가시광선은 400~700나노미터의 파장을 갖지만, 700나노미터 이상의 파장 영역은 적외선, 센티미터~수백 미터까지는 라디오파 영역에 속한다. 반대로 400나노미터보다 짧은 영역은 자외선, 그보다 더 짧은 나노미터 이하는 X-선, 그 이하는 감마선 영역에 속한다. 이론적으로 빛은 모든 길이의 파장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빛의 이런 특성을 측정에 이용할 수는 없을까?

빛의 스펙트럼 <출처: wikimedia.org>


파동의 주기성을 자의 눈금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앞선 글 [소리는 파동의 겹침]에서 파동의 특징은 주기성임을 얘기했다. 파동은 공간에 퍼진 모양이나 시간에 따른 진동 모두 주기적으로 이루어진다. 파동의 주기성을 자의 눈금에 대응해서 생각하면 빛을 자로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빛을 자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은 미국의 앨버트 마이켈슨이다. 마이켈슨의 간섭계로 알려진 이 장치에서는 광원에서 나온 광선이 빔 가르개(beam splitter)를 지나면서 두 갈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도록 고안되었는데, 광선이 갈라지면서 지나는 두 경로의 거리가 서로 다르거나, 서로 다른 물질을 지나면서 굴절률의 차이가 생기면 빛 파동의 위상차가 발생하여 간섭무늬에 변화가 생긴다.

예를 들어, 간섭계의 경로나 굴절률 차이가 정확히 180도의 위상차를 만든다면 상쇄간섭 상태가 되어 빛은 밝기가 ‘0’이 된다. 만일 두 경로 중 한쪽의 거울이 움직여 위상차에 변화가 생기면 상쇄간섭에서 벗어나 빛의 밝기가 커진다. 이 밝기 변화를 측정하여 위상차 각도를 구하면, 거울이 움직인 거리를 빛의 파장과 위상차에 비례하는 거리로 환산할 수 있다. 마이켈슨 간섭계의 원리를 적용하면 길이 측정의 정밀도는 빛의 파장과 거울 사이의 거리에 따라 얼마든지 높게 만들 수 있다. LIGO 중력파관측소에서 높은 정밀도의 측정을 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바로 마이켈슨 간섭계의 원리를 이용한 측정장치다.

마이켈슨 간섭계. 1번 그림에서 아래쪽 광원(보라색 별표가 있는 네모)에서 나온 빛이 빔 가르개(초록색 선)에서 왼쪽과 위쪽, 두 개의 광선으로 갈라진다. 각각의 광선이 거울(하늘색 네모)에서 반사되어 검출기(오른쪽 보라색 원)에서 겹쳐진다. 2번 그림은 이 간섭계의 왼쪽 부분에 중력파(노란색 기둥)가 겹쳐진 모습이다. 반사된 광선의 경로가 달라지면서 검출기 간섭무늬의 밝기가 달라졌다. <출처: (cc) Cmglee at wikimedia.org>

잡음없이 원하는 신호만 보고 싶다면

파동의 주기성은 공간에 퍼진 모양 뿐만 아니라 시간에 따른 진동에도 있다. 따라서 빛의 파동성을 이용하면, 공간상의 길이 측정 뿐 아니라 시간적 간격의 측정도 가능하다. 공간적인 위상차가 있는 파동이 섞일 때 상쇄-보강 간섭을 일으키듯, 주파수가 다른 두 파동이 섞이면 맥놀이라는 특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440 Hz와 441 Hz의 소리를 내는 소리굽쇠를 동시에 두드리면, 두 파동의 간섭에 의해 1초에 한 번 진동하는 1 Hz의 소리가 난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일정한 진동수의 파동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파동의 진동수를 쉽게 측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악기를 조율할 때, 아무런 기준 주파수 없이 440, 441, 442, 443 Hz 진동수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440 Hz의 소리를 기준으로 정하면 440, 441, 442, 443 Hz 진동수를 구분하는 대신에 0, 1, 2, 3 Hz를 구분하는 일이 되어 상대적인 진동수의 차이를 쉽고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맥놀이의 원리는 단순히 진동수를 측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물체의 속력이나 잡음을 제거하는 데도 유용하게 쓰인다.

110Hz와 104Hz 파동을 섞었을 때 나타나는 6Hz 주기의 맥놀이 모양<출처: Barak Sh at wikimedia.org>

맥놀이를 이용한 측정 장치 중 자동차나 야구공의 속력을 측정하는 데 유용한 스피드건이 있다. 일반적으로 스피드건은 마이크로파를 물체에 발사하고 반사되는 파동의 진동수 변화를 측정하여 물체의 속력을 구한다. 움직이는 물체에서 반사되는 파동에는 도플러 효과가 작용한다. 물체의 운동 방향이 파동의 전파 방향과 같으면, 물체에서 반사되는 파동의 주파수는 그 속력에 비례하여 줄어든다. 하지만 그 물체가 파동의 전파 방향과 반대로 움직인다면, 반사된 파동의 주파수는 속력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예를 들어, 10 GHz 마이크로파를 움직이는 자동차에 발사했을 때, 반사되어 돌아온 마이크로파의 주파수가 (10G+100)Hz라고 하면, 스피드건은 쉽게 주파수가 100 Hz 차이남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물체는 (100 Hz/10 GHz)x(빛의 속력/2) = 1.5 m/s, 즉 시속 5.4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다가오는 것이 된다.

맥놀이는 잡음 제거 기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원리다. 앞서 설명한 맥놀이 현상은 서로 다른 진동수 f1, f2의 파동이 섞일 때 진동수의 차이에 해당하는 (f1-f2)의 파동이 걸러져 나오는 현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진동수의 합 (f1+f2)에 해당하는 파동도 만들어진다. 다만 (f1+f2)의 파동은 더 높은 진동수의 파동이라 실제로는 구분이 쉽지 않다. 하지만 f1과 f2 진동수의 파동이 섞여서 (f1-f2), (f1+f2) 진동수의 파동을 만드는 원리를 거꾸로 적용하면, 잡음을 줄이는 측정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60Hz 이하의 전기 신호 f1을 그대로 키우려고 하면, 주변의 잡음이 더 크게 증폭된다. 특히 60 Hz의 교류전원에 의한 잡음은 크게 나온다. 따라서 f1의 신호를 증폭시키는 대신, f2=10 kHz의 교류신호를 함께 섞으면 (f2+f1), (f2-f1) 파동 신호로 바뀌어 저주파의 잡음과 상관없이 증폭될 수 있다. 이렇게 증폭된 신호에 다시 f2=10 kHz를 섞으면 증폭된 f1과 (f1+2*f2)의 신호로 분리되어 잡음이 없는 증폭된 f1 신호를 얻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로크인 앰프(Lock-in Amplifier)’라 한다.

중력파 신호를 검출하는 과정에서도 온갖 종류의 잡음에 대한 검증 절차를 갖추고 있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에서 수소 원자 크기보다 작은 길이의 흔들림을 잡아내는 실험에서는 건물 내 사람들의 발걸음이나 건물 밖의 바람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 이런 과정에서 맥놀이 원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주변에 발생할 수 있는 잡음의 진동수 영역에서 분리된 영역을 이용한 방법을 찾는다면 측정의 정밀도를 한층 높일 수 있다.

소리굽쇠를 이용한 맥놀이 <출처: YouTube, MIT Physics>

길이 측정의 한계는 결국 전자 위치 측정의 한계

자의 눈금을 기준으로 한 측정이나 빛의 간섭을 이용한 측정 모두 한계가 있다. 자의 눈금은 눈금을 긋는 선의 두께를 원자 이하로 줄일 수 없다.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원자의 크기를 재기 위한 자를 만든다면 자의 눈금을 어떤 것으로 정할지 고민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가시광선 파장 이하의 물체를 직접 관찰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가시광선 파장보다 3천분의 1 이하인 원자의 모양을 정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빛의 간섭을 이용한 측정에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마이켈슨 간섭계의 원리는 주어진 파장의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정밀도를 높이려면 더 짧은 파장의 빛을 써야 한다. 그런데 빛의 특성상 가시광선보다 짧은 파장의 빛은 파동의 성질보다 입자의 성질이 커서 파장을 눈금으로 활용하기에 적절하지 않게 된다. 특히 원자 크기 이하를 정확히 볼 때 필요한 감마선은 파장보다는 입자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결과적으로 길이 측정의 한계는 원자의 크기를 측정하는 방법의 문제로 돌아간다. 원자는 핵입자와 전자로 구성되어 있어, 원자의 크기를 측정하는 것은 핵입자 주변에 있는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것과 같다. 결국 길이 측정의 한계는 전자의 위치 측정의 한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측정 대상인 전자 입자와 측정 도구인 빛에 담겨있는 본질적 성질을 살펴보기로 하자.

 
유재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고체물리학 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12년에 서울대 교육상을 수상했다. 과학은 자연과 인간의 대화이자 생각하는 방법임을 강조하며, 과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