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도가 우주 만물 중에서 가장 빠르다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도전을 받게 됐다.
원자핵이 붕괴할 때 나오는 중성미자(中性微子·neutrino)가 빛보다 빨리 이동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와 로마 인근의 그란사소 이탈리아 국립물리실험실
연구팀은 23일(현지시간) CERN에서 지난 3년 동안 진행한 중성미자의 이동 속도 측정 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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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RA(Oscillation Project with Emulsion-tRacking Apparatus)’로 불리는 이번 실험은 CERN의 입자
가속기에서 나온 중성미자의 빔을 땅속을 통해 730㎞ 떨어진 그란사소 실험실로 쏘는 방식으로 진행
됐다. 그란사소 실험실 지하 1400m에는 1800t이나 되는 거대한 검출기가 있어 중성미자의 이동 속도
를 10나노초(秒·1나노초=10억 분의 1초) 단위로 측정할 수 있다. 중성미자는 전기적으로 중성(中性)
을 띠고 있어 다른 소립자들과 거의 반응을 하지 않는다. 질량이 전자의 10만 분의 1 정도로 아주
작아 지구 전체도 진공을 통과하듯이 쉽게 뚫고 지나간다.
연구팀은 모두 1만6000회를 측정, 중성미자가 땅속으로 730㎞를 이동하는 데 0.00243초 걸리는 것
을 확인했다. 이는 같은 거리의 진공 공간을 빛이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60나노초가 짧은 것
이다. 초당 이동거리로 환산하면 중성미자가 빛보다 1초에 619㎞ 정도 더 빨리 움직인 셈이다. 빛은
진공 상태에서 1초에 29만9792.458㎞를 이동한다.
이번 실험 결과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바탕을 둔 4차원 우주 모델
도 바뀌어야 하는 만큼 학계에서는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안토니오 지치
치(이론물리학) 교수는 네이처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빛보다 빨리 이동하는 게 없다는 것이 아인슈
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고, 이것이 흔들리는 셈”이라며 “끈이론(string theory) 등에서 예측하는 대
로 또 다른 차원이 추가된 우주 구조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실험대로라면 과거 지구에서 16만8000
광년 떨어진 초신성(1987a)의 폭발 때 중성미자의 파동(펄스)이 먼저 도달하고, 몇 년 뒤 ‘빛(섬광)’
이 관측돼야 했으나 실제는 불과 몇 시간 차이에 불과했다는 점을 들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2007년에도 미국 미네소타주의 한 연구팀이 일리노이의 페르미 연구소에서 보내온 중성미자
로부터 유사한 실험 결과를 얻었으나, 검출기 위치 등으로 인해 불확실한 점이 있어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
◆중성미자(中性微子·neutrino)=원자핵의 중성자가 방사선인 베타(β)선을 내며 붕괴할 때 양성자·
전자와 함께 생성되는 소립자다. 1934년 엔리코 페르미가 중성의 작은 입자라는 뜻으로 이 이름을 붙
였다. 우주에서 가장 많이 존재하는 입자다.
◆특수상대성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광속(光速·c) 불변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 아인슈
타인의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에너지(E)가 질량(m)으로 변환될 수도 있는데 이 관계를 나타낸
식이 ‘E=mc2’이다. 물체의 속도가 빨라져 빛의 속도 에 근접하면 질량이 무한정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빛의 속도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이 이론은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