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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족 49만명..가족의 비극 어디까지?

블핵홀 2013. 10. 14. 10:43

 

캥거루족 49만명..가족의 비극 어디까지?

['캥거루족'의 비극 上] 노후자금 털어 자식 뒷바라지…생활고에 자살까지 머니투데이 | 이해인 기자 | 입력 2013.10.14 07:23 | 수정 2013.10.14 08:57
 
[머니투데이 이해인기자][['캥거루족'의 비극 上] 노후자금 털어 자식 뒷바라지…생활고에 자살까지]

# 대기업에서 일하다 정년을 앞두고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 그만둔 김모씨(58). 그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한 딸(28)의 대학원 학비 마련에 등골이 휜다. 퇴직금 만으로는 노후 대비에 막내아들 대학 학비, 네 식구 생활비까지 부담하기엔 역부족이다. 김씨는 할 수 없이 지난달부터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체력이 예전같지 않지만 한달 100만원이라도 벌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딸이 대학원에 가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섭섭했다"며 "하지만 '무능한 아빠'라는 소릴 들을까봐 말릴 수 없었다"며 고개를 떨군다. 그는 요즘 친구들에게 건강유지 때문에 소일거리로 경비일을 한다고 둘러댄다고 한다.





한 어르신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거닐고 있다/사진=뉴스1

# 안정된 경제 단체에서 일했던 이모씨(78·가명). 그는 지난달 30일 경기 남양주시의 한 하천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씨의 목에는 끈에 쓸린 자국이 나있었다. 주변에는 끊어진 끈과 '불암산에 뿌려달라'고 적힌 유서가 발견됐다. 이씨는 아들의 사업을 돕기 위해 노후 자금을 쏟았지만 사업은 잘 풀리지 않았고 함께 사는 아들 부부와의 사이도 서먹해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씨가 외로움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한 뒤 걸음을 옮기다 쓰러져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번듯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부모의 '등골브레이커'로 전락한 '캥거루족'들과 다 큰 자녀를 제대로 독립시키지 못해 비자발적 '헬리콥터 부모'들이 낳은 시대의 비극이다.

캥거루족은 자립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기댄 채 살아가는 받는 이들을 뜻한다. 어미 주머니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 아기 캥거루의 습성을 빗댄 신조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현재 비경제활동인구와 실업자, 주 36시간 미만 단기 근로자 등 우리나라 30~40대 캥거루족은 총 48만60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캥거루족의 존재는 부모의 부담으로 직결된다. 지금의 부모들이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세대라는 점에서 캥거루족이 가지는 무게는 더욱 크다.

통계청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살 충동을 겪었다고 답한 노인의 비율은 2008년 29.3%에서 지난해 35.1%까지 늘었다.

캥거루족이 낳은 갈등은 급기야 '존속살인'이라는 극단적으로 패륜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인천 모자살인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퀵서비스 배달원으로 일하는 정모씨(29)는 지난 1일 자신의 어머니 김모씨(58)와 형인 장남 정모씨(32)에 대한 살인 및 시체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2년 전 결혼 당시 어머니로부터 1억원 상당의 빌라를 받았지만 적은 수입에 도박 빚까지 겹치며 어머니에게 다시 손을 벌렸다. 그러나 어머니가 거부하자 결국 어머니와 형까지 살해하는 끔찍한 비극을 저지르고 말았다.

'패륜아'의 대명사로 아직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1994년 박한상 사건도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아들의 유산을 노린 존속살인이었다.

전문가들은 '캥거루족'과 관련한 갈등들이 부모 세대의 부족한 노후준비와 청년층의 높은 실업률 등이 겹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교수는 "일정 시기가 되면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하는데 취업이 잘 되지 않아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사는 자식들이 크게 늘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범죄에서 살인 사건의 비율은 가장 낮은 반면 존속 살인 등 가족 범죄 발생률은 높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이해인기자 hi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