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관련 외/127.‘신의 입자’를 증명해 낸 CERN

‘신의 입자’를 증명해 낸 CERN은?

블핵홀 2013. 11. 5. 07:30

 

‘신의 입자’를 증명해 낸 CERN은?

('힉스입자'발견으로,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피터힉스 박사'는 '힉스 입자'를 신(神)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신(神)의 입자'라고 불리어지는 것을 매우 싫어 한답니다.)

정치와 전혀 무관한 순수 입자물리연구소

 

스위스와 프랑스의 접경지역 ‘메헝’(Meyrin). 눈 덮인 알프스와 쥐라 산맥 사이에 있는 이곳에 세계 최대 순수입자물리연구소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자리잡고 있다.

CERN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12개국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소로 1954년 창립한 이래 회원국이 20개 국가로 늘어났다. 총 참여국은 66개국, 2개 국제기구에 달한다. 연간 약 1조2천억 원 규모의 예산을 회원국들의 GDP에 비례해 분담금을 갹출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우주생성의 근원 등을 밝히기 위해 지하 100m 깊이에 세계 최대의 강입자가속기(LHC)를 1996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해 2009년 11월부터 정상 가동하고 있다. 세계 물리학자의 약 50%인 8천여 명이 연간 30% 이상을 CERN에 머물고 있고 직원 수만 2천500여 명에 달한다.

▲ 스위스와 프랑스 접경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CERN은 세계 최대 순수입자물리연구소다. 최근 '신의 입자'로 알려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증명해 내 이론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데 이바지 했다. 사진은 CERN의 전경.  ⓒ위키피디아

물리학자, 그리고 컴퓨터 과학 등 전자공학자가 상당수를 차지하는 CERN의 주요 목적은 연구개발이다. 그러나 미래를 위한 교육활동, 그리고 서로 다른 국가출신 과학자들의 공동 연구활동을 통한 평화증진도 빼놓을 수 없는 목표다. 서로 앙숙 간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인도와 파키스탄 과학자들이 CERN의 연구과제를 통해 공동 협력하는 사례도 많다.

한국은 현재 비회원국이다. 그러나 여름철에 학생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하계 강좌에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현재 CERN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이는 미국 퍼듀대학에서 파견된 유휘동 박사를 비롯 10여 명에 불과하다.

지난 8일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영예가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견했던 영국의 피터 힉스 에든버러 대학 명예교수 등 2명에게 돌아가자 이를 발견하고 입증했던 CERN은 샴페인을 터트리며 환호했다.

수십 명의 CERN 연구원들은 이날 힉스 교수와 벨기에의 프랑수아 앙글레르 브뤼셀 자유대학 명예교수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에 손뼉을 치며 환영했다.

힉스 입자를 증명해 낸 연구소가 바로 CERN

롤프 호이어 CERN 소장은 “오늘은 입자 물리학의 역사적인 날”이라며 “여러분의 노력 덕분에 노벨 아카데미가 물리학상을 주게 된 것”이라며 연구원들을 격려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힉스 입자를 발견하고 입증함에 따라 비록 부분적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힉스 교수는 지난 1964년 CERN의 학술지 ‘물리학 레터’를 통해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종류와 입자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들을 설명하는 현대 이론물리학의 ‘표준모형’에서 가장 중요한 힉스 입자의 메카니즘을 가설로 내놓았다.

그러나 힉스 입자 가설은 지난 49년 동안 관측되거나 입증되지 못한 채 이론으로만 정립돼 오다 CERN이 2008년 LHC를 가동하면서 햇빛을 보게 됐다. CERN은 지난해 7월 LHC 충돌실험을 통해 힉스 입자를 99.999994% 확률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결국 올해 3월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히는 열쇠로 알려진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입증했다.

CERN은 힉스 입자를 발견한 CMS 검출기를 비롯해 빅뱅 재현을 통한 우주 초기상태 연구를 중점적으로 하는 앨리스(ALICE) 검출기, 힉스 입자 등 입자의 표준모델 입증을 주로 하는 아틀라스(ATLAS), 제네바 공항 쪽에 위치한 LHCb 검출기 등 4대의 대형 검출기와 2개의 소형 검출기 등 6개의 검출기를 LHC 중간 중간에 배치해 연구목적에 따라 해당 검출기를 운용하고 있다.

양성자와 원자핵 같은 강입자를 7 TeV(테라 전자볼트)의 에너지로 가속시키는 둘레 27㎞의 타원형 LHC의 둘레에 일정한 간격으로 검출기를 배치하고 실험 목적에 따라 충돌 장소를 조절하며 충돌 직후 재현되는 빅뱅상태의 연구를 통해 현대 물리학의 이론과 가설들을 검증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CERN이 LHC를 가동해 실험에 들어갈 때에는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의 물리학자들이 몰려든다. 원래 명칭은 유럽 원자핵 공동 연구소(Conseil Européen pour la Recherche Nucléaire). 그래서 CERN으로 불린다.

HTML과 WWW의 발상지이기도

CERN은 설립 초기부터 입자 가속기등을 이용해, 고 에너지 물리학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또한 물리학자들의 문헌 검색 및 제휴를 위하여 고안된 HTML과 월드 와이드 웹(WWW)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CERN은 프랑스의 물리학자 루이 드 브로이 공작의 의견으로부터 시작됐다. 1949년 12월 프랑스 원자력 고등위원회의 자문의원이었던 드 브로이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여러 참가국 개개의 상황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학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실험실이나 연구소가 생기면, 국가적인 시설 이상의 자원에 힘입어 규모와 비용 면에서 개별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는 과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1951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회의에서 연구소를 설립하는 평의회 설립에 대한 결의안이 채택되었고, 두 달 후 11개국이 결의안에 서명해 평의회와 CERN이란 이름이 탄생했다. 연구소의 부지는 1952년 10월 평의회에서 스위스의 제네바로 결정되었다.

CERN의 상징은 가속기와 충돌기

CERN의 발전 과정은 입자가속기의 설치를 통한 과학적 업적과 연관되어 있다. CERN의 최초의 가속기는 1957년 건설된 싱크로사이클로트론(Synchrocyclotron, SC)이다. 1964년에는 양성자 싱크로트론(Proton Synchrotron, PS)이 건설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새로운 가속기인 초 양성자 싱크로트론(Super Proton Synchrotron, SPS)가 건설되었다.

1971년에는 둘레 6.9km인 CERN 최초의 충돌기인 교차 저장 링(Intersecting Storage Ring, ISR)이 건설되었고, 1989년 7월 14일에는 대형 전자 양전자 충돌기(Large Electron Positron collider, LEP)가 처음 가동되었다. 2008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높은 에너지 입자 충돌기인 LHC가 건설되었다.

싱크로사이클로트론(SC)과 교차 저장 링(ISR)은 현재 가동 중지되어 사용되지 않고 있지만, LHC를 비롯한 나머지 가속기와 충돌기는 여전히 CERN의 입자 물리학 및 핵 물리학 연구에 이용되고 있다. CERN은 설립 목적에 걸맞게 입자물리학에서 물리학자 집단을 선도하며, 최고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많은 중요한 실험들이 CERN에서 이루어졌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도 많이 배출했다. 카를로 루비아와 시몬 반 데르 메르는 1984년 W와 Z보존 발견에 기여한 업적으로 198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조르주 샤르파크는 다중 선 비례 검출기를 발명해 입자 검출기의 발전에 기여한 업적으로 199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 받았다.

WWW의 팀 버너스 리는 CERN의 프로그래머

▲ WWW를 개발해 인터넷 시대를 여는데 기여한 팀 버너스 리는 검퓨터공학자로 CERN의 프로그래머다.  ⓒ위키피디아
CERN은 물리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월드 와이드 웹(WWW)의 발명이 바로 그것이다. CERN의 여러 컴퓨터에서 얻은 방대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주고받는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던 웹은 1989년 팀 버너스 리가 기획하였다. 

1980년 그가 CERN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계획했던 프로그램이었다. 인콰이어(ENQUIRE)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해 하이퍼텍스트를 이용한 인터넷을 도입하려 했지만, 그의 기획은 채택되지 않았다.

리는 1990년 벨기에 컴퓨터 공학자 로버트 카죠의 도움을 받아 프로젝트를 다시 발전시켰다. 그는 NeXT사의 컴퓨터에서 직접 웹 코드를 작성하였고, 그 해 12월 첫 번째 웹 사이트가 탄생하였다. 1994년 4월 30일 그는 웹을 전 세계 어느 사람이나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쓸 수 있도록 하게 하는 허가를 CERN으로부터 받아내었다.

CERN은 후에 LHC 프로젝트의 시작과 함께 웹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손을 떼었다. 최근에는 네트워크상에 있는 수많은 컴퓨터들의 자원을 동시에 이용하여 단일 문제를 풀기 위한 기술인 그리드 컴퓨팅의 중심지로서도 역할을 하고 있다.

WWW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억만장자가 된 사람이 바로 빌 게이츠다. 오늘날 인터넷 시대를 연 것이다. CERN이 이제까지 이룩한 업적은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가운데 입자물리학 관련 몇 가지만 소개해 보자.

가가멜 프로젝트= 전기적으로 중성인 약한 상호작용을 의미하는 중성류의 증거를 발견하기 위해 발족한 프로젝트이다. 전자기적인 상호 작용으로 상대적으로 작은 중성류의 효과가 검출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자기 상호 작용을 하지 않는 중성미자를 이용하여 중성류의 효과만을 볼 수 있는 실험을 설계하여야 했다.

1963년 시에나 컨퍼런스 직후 많은 양의 중성미자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중성미자 실험이 계획되었고, CERN과 프랑스 원자력위원회 사이에 이루어진 협약을 바탕으로 1965년 12월 가가멜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대형 거품상자의 제작이 계획되었다. 가가멜이라는 이름은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이야기’에 나오는 거인 족의 이름에서 따왔다.

W 보존과 Z 보존의 발견= CERN이 세운 수많은 업적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것은 W와 Z보존을 발견한 것이다. W 보존과 Z 보존의 발견은 원자핵 사이의 약한 상호작용을 매개 되는 입자를 찾기 위한 시도에서 얻어진 결과였다.

1930년대 중반 페르미가 원자핵의 베타 붕괴로부터 상호 작용의 패턴을 읽어내었고, 뮤온의 붕괴, 파이온의 붕괴 등의 현상도 페르미의 이론으로 잘 설명되는 것이 확인되면서 강한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 작용이 다른 상호 작용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이후에도 이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었고, 머리 겔만, 리처드 파인만, 셸던 리 글래쇼, 피터 힉스 등의 과학자들에 의해 약한 상호 작용에 관련된 연구 결과들을 제시되고 있었다. 1967년에는 이 모든 것을 정교하게 짜 넣어 W 보존과 Z 보존으로 매개 되는 약한 상호 작용과 질량이 없는 광자를 통해 매개되는 전자기 상호 작용을 함께 기술하는 스티븐 와인버그의 논문 ‘렙톤의 모형’이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