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7일 미국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센터가 우주배경복사에서 중력파를 찾았다고 인터넷 생중계로 발표
했다. 학계는 흥분했고 세계 언론이 ‘세기의 발견’이라며 앞 다퉈 보도했다. 그런데 막상 뉴스를 들은 대중은 갸우뚱하다.
빅뱅, 중력파, 우주배경복사, 급팽창이론 등 나오는 말 하나하나는 다 노벨상 감인데 정확히 무얼 말하는지는 알쏭달쏭
하다. 무슨 일이기에 이처럼 지구가 들썩이는 걸까.
왜 이렇게 떠들썩하나
급팽창 이론의 직접적인 증거를 찾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남극에서 ‘바이셉2(BICEP2)’라는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측하던 연구팀이었다. 이들은 우주가
태어나던 날, 즉 빅뱅 이후 처음 흘러나온 빛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주배경복사를 연구하던 팀은 많았다. 이미 두 번이나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주제였다. 만일 바이셉2 연구팀이 단순
하게 우주배경복사를 조금 더 정확하게 봤다면 이번처럼 환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월 17일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의 존 코백교수 등 ‘바이셉2’ 연구진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코백 교수는 “우주론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를 수많은 사람의 엄청난 노력으로 이뤘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클렘 파이크, 제이미 바크, 카오린 쿠오, 존 코백 박사. <출처: 연합뉴스>
바이셉2 연구팀이 찾고 있었던 것은 우주배경복사 속에 숨어 있는 중력파의 흔적이었다. 만일 그들이 중력파를 발견한다
면 ‘빅뱅 직후 우주가 갑자기 엄청나게 커졌다’라고 할 수 있는 급팽창이론(인플레이션)의 직접적인 증거를 찾을 수 있었
다. 어려운 단어들이 낯설게 들리겠지만 물리학계에서는 언제나 ‘최고의 인기검색어’들이다.
중력파는 조셉 테일러와 러셀 헐스라는 과학자가 간접적으로만 증명해 1993년 이미 노벨상을 받았다. 그러나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찾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2015년 이후에나 새로운 기술을 통해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희망뿐이었다. 급팽창이론 역시 직접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늘 찜찜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 연구는 중력파와 급팽창이론이라는 두 가지 ‘미싱 링크(잃어버린 고리)’를 한 방에 확인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예고 없이 나타나 빌보드차트와 유튜브 1위를 한꺼번에 달성한 셈이다.
박완일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한마디로 세기의 발견”이라며 “힉스 입자 발견이 표준모형을 완성
했다면, 이번에는 우리 우주가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줬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번 연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우주의 시작인 빅뱅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자.
정말 빅뱅 후 급팽창이 일어났을까
은하와 생명의 진정한 기원 드러나
태초에 빅뱅이 있었다. 미국 인기 드라마 ‘빅뱅이론’의 주제가처럼 전 우주가 빅뱅에서 시작됐다. 빅뱅의 순간인 ‘0초’에
우주는 너무나도 작았다. 빅뱅 후 굉장히 짧은 찰나에 우주가 엄청나게 커졌다. 숫자로 이야기하면 ‘1억분의 1억분의 1억
분의 1억분의 1초’보다 짧은 시간(10-37초부터10-32초 사이)에 우주는 ‘1억배의 1억배의 1만배’ 혹은 ‘1억배의 1억배의
1억배의 100만배’로 커졌다. 이를 급팽창(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급팽창 후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난 38만 년 후에야 직진하는 빛이 태어났다(그전에는 빛을 이루는 광자가 붙잡혀 있었다).
놀랍게도 이때 태어난 빛이 아직도 우주를 떠다니고 있다. 이를 우주배경복사 혹은 우주마이크로 배경복사라고 부른다.
우리는 전파망원경 등 각종 장비로 우주배경복사를 찍어서 우주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빛이 ‘출산’된 이후
에는 우주가 커가는 걸 찍은 사진이 많은 셈이다.
우주배경복사의 신기한 점은 어느 방향에서 관측해도 정보가 똑같다는 것이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를
“조선시대 두 전령이 평양과 전주에서 당시 가장 빠른 운송수단인 말을 타고 한양으로 달려와 임금에게 올린 정보가 완벽
하게 같은 것처럼 신기한 일”이라고 비유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인 빛을 타고 우주 사방에서 날아온 정보들이
다 똑같다고 하니 수수께끼 같은 노릇이었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1980년 미국 MIT 물리학과 앨런구스 교수가 내놓은 것이 바로 급팽창이론이다. 빅뱅 후에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 우주가 엄청나게 커졌다면 최초의 우주에 대해서 다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설명된다. “강릉에
같이 있던 두 전령이 정보를 공유하고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처럼 각각 평양과 전주로 공간이동을 한 후에(즉 급팽창
을 한 후) 한양으로 각각 출발했다”고 박석재 연구위원은 설명했다.
급팽창이론의 또 다른 장점은 거대한 우주의 씨앗이 되는 초기조건을 준다는 데 있다. 빅뱅부터 급팽창 직전까지는 우주
공간이 균일했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흘렀다면 은하도, 별도, 생명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급팽창이 일어나
면 이 짧은 기간 동안에 양자요동이 순간적으로 얼어버리면서 주변보다 100만분의 1 정도 밀도가 높거나 낮은 지역이
생긴다. 이런 곳이 후에 은하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과학자들은 은하와 생명의 기원은 빅뱅보다 급팽창이라고
하곤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138억 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이것을 관측으로 증명하는 게 너무나 어려웠다. 여러 관측을 통해
서 간접 증거들은 나왔지만, 직접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마지막 질문이 남아 있다. 혹시 급팽창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우주의 역사는 모두 틀린 것이 되고 만다.
연구팀이 남극까지 간 이유
잡음없이 깨끗한 중력파를 발견하라
과학자들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최초의 빛, 즉 빅뱅 38만 년 이후의 첫 우주배경복사에서
그 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까. 그것이 바로 급팽창 과정에서 나온 중력파였다. 우주배경복사에는 중력파의 흔적인
B-모드가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슬슬 어려워진다. 이것들을 이해하려면 먼저 중력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중력장의 개념을 만들면서 같이 등장했다. 물질이 움직이거나 충돌하면
시공간이 진동하고 이때 중력파가 나온다는 것이다.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면 물결이 퍼져나가는 것 같다.
이론적으로 급팽창 기간 중에 우주 거대구조를 만들어낸 ‘중력의 씨앗’이 요동친다. 이때 중력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흔적이 우주배경복사에 남아 있다면? 급팽창 이론에 의하면 초기 중력파는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와야 한다. 만일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동일한 중력파를 관측했다면 급팽창이론이 맞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주배경복사에서 초기우주의 중력파를 관측할 수 있을까? 중력파를 지구의 지진파에 비유해서 생각
해 보자. 횡파인 지진파가 땅속에서 전달될 때, 진행방향에 수직인 땅은 수축과 팽창을 겪는다. 마찬가지로 중력파는
시공간을 수축 팽창시킨다. 이런 공간에 빛을 놓게 되면, 빛에 편광현상이 일어난다. 편광 현상은 E-모드와 B-모드
두 가지가 생기는데 오직 B-모드만이 중력파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사진은 바이셉2 망원경의 센서. 512개의 초전도 극정밀 탐지기로 우주배경복사를 측정한다. 그래프는 바이셉2 망원경으로 관측한 데이터다. 중력파가 검출되지 않았다면 그림의 검은선이 모두 수직이나 수평방향이어야 한다. 대각선으로 기울어진 검은선(빨간색과 파란색 부분)이 B-모드 편광성분으로 중력파가 존재함을 나타낸다. <출처: Anthony Turner(JPL), 하버드스미소니언천체물리센터>
그런데 이번에 연구팀이 드디어 우주배경복사에서 B-모드 편광성분을 찾아낸 것이다. 연구팀은 남극에서 바이셉2라는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하늘 전체의 약 1∼5˚(보름달 지름의 2∼10배 정도 되는 범위)에 이르는 부분을 관측했다. 초전도
현상을 이용하는 극정밀 탐지기 512개를 동원해서 2010년 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측정한 데이터를 분석했다. 탐지
기가 작동하는 온도가 0.25K일정도로 예민하기 때문에 이들이 남극까지 간 것이다. 남극은 온도와 습도가 낮고 대기가
가장 안정적이라서 주변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가 연구를 주도하고 스탠퍼드대와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센터(SLAC),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와 칼텍(캘리포니아공대), 미네소타대 등이 참여했다.
혹시 이번에 발견한 B-모드의 원인이 중력파가 아니거나 급팽창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온 것은 아닐까. 우주배경복사가
B-모드가 되려면 굉장히 강력한 중력파가 필요하다. 이렇게 강한 중력파는 우주가 급팽창할 때나 나온다. 즉 중력파에게
‘맞은’ 우주배경복사만이 B-모드가 될 수 있으며 다른 방법은 전혀 없다. 따라서 이번에 관측한 우주배경복사의 B-모드
가 중력파와 급팽창이론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검증 통과하면 노벨상 확실
정확도 99.999999636%
이번 연구 논문은 현재 ‘네이처’에서 심사 중이다. 그런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중력파, 즉 시공간의 물결을 포착한
첫 사례”라고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센터가 직접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일반적인 과학연구 발표 관행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의의로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연구팀이 그만큼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연구팀이 하루라도 빨리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 기자회견을 미리 연 것 같고, 네이처
발표도 시기의 문제일 뿐 큰 문제없을 거라고 본다”며 “워낙 우주배경복사에 대해 오랜 시간 연구를 해온 팀이었으니
실험 자체에 대한 신뢰도는 높다”고 말했다.
연구팀도 이번 실험 결과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확실하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미국 미네소타대의 클렘 파이크
교수는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은 작업이었는데, 찾고 보니 쇠지렛대처럼 큰 물건이었다”이라고 말했다.
상관계수는 r=0.2, 오차범위는 +0.07, -0.05이다. 신뢰수준은 5.9 시그마다. 99.999999636%의 정확도를 의미한다.
2012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힉스 입자를 찾았다”며 밝힌 신뢰수준인 5 시그마보다 높다(정확도
99.999943%). 일반적으로 자연과학에서 5 시그마 정도면 믿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우선 우주초기 중력파만이 아니고, 우주먼지에서 나오는 편광도 있기 때문
에 이러한 노이즈가 정밀하게 제거가 된 것인지 검증해야 한다. 이 작업은 우주배경복사 관측위성 ‘플랑크’에서 나온 자료
를 이용할 것이다. 플랑크는 지구 대기권 밖에 있기 때문에 노이즈의 영향이 현저히 적다. 그 때까지는 호흡을 좀 더 가다
듬고 기다려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논문도 통과될 때까지는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
이 관측이 정말 맞다면 이제 빅뱅이론에서 급팽창의 존재는 검증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급팽창의 원인은 여전히 물음
표다. 현재 추진 중인 라이트버드라는 위성 등의 관측이 실현된다면 아마도 은하와 생명의 기원에 대해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주 급팽창이론을 만든 앨런 구스 교수는 미국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감동이 우리에게도 전해질지 지켜봐야겠다.

중력파 관측, 내년엔 레이저로
태초의 빛, 우주배경복사를 ‘건드린’ 중력파. 중력파는 사실 아무 물질이라도 움직이기만 하면 생긴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화장실에 갈 때도 생긴다. 하지만 중력파는 크기가 매우 작다. 거대한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이 충돌할 때 나온
중력파도 아직까지 한번도 측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중력파는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학자들은 어떻게든 중력파를 측정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이번에 발표한 우주배경복
사를 이용한 방법이다. 또 하나는 중력파가 만든 ‘시공간의 일렁임’을 찍는 것이다. 시공간이 일렁이면 그 안에 있는 물체
는 길이가 변한다. 중력파를 지진파에 비유하면 지진이 났을 때 건물이 흔들리는 것과 같다. 따라서 물체의 길이 변화를
추적하면 중력파를 확인할 수 있다. 아쉽게도 이 변화가 너무나도 미세해서 측정하기 힘들다. 태양 반지름만큼 긴 물체가
변하는 게 수소원자 크기 정도다. 멀리서 한라산을 구경하는데, 산자락의 개미가 발을 드는 게 보이겠는가.
그래도 물체가 길수록 변화를 확인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 등에서 수km에 달하는 레이저 간섭
계로 중력파 확인 실험을 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미국 ‘라이고(LIGO)’는 4km의 진공터널 2개를 붙여 놓은 모양이다.
두 터널의 끝에는 거울이 달려있다. 중앙에서 양쪽으로 레이저를 보내면 거울에 반사돼 돌아온다. 돌아온 레이저 빔
2개는 정확히 상쇄간섭을 일으켜 빛이 사라진다. 만약 터널의 길이가 조금이라도 변하면 상쇄간섭을 하지 않고 빛이
다시 보일 것이다.
연구팀은 레이저가 ‘반짝’할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개미 발가락’보다도 미세한 길이 변화를 측정해야하기 때문에
거울 주변의 진동을 완전히 차단하고, 레이저가 지나가는 터널은 진공 상태로 유지한다. 현재는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
중이며, 2015년쯤 성공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같은 실험을 이탈리아에서는 ‘버고(VIRGO)’, 독일에서는 ‘지오600
(GEO600)’이라는 장비로 하고 있다.
이 외에 조셉 테일러와 러셀 헐스가 1973년에 성공한 방법이 있다. 이들은 질량이 매우 큰 중성자 별 2개가 돌면서 공전
주기와 거리가 짧아지는 것을 관측했다. 그 이유가 두 별이 중력파를 만들면서 에너지를 잃기 때문이라고 해석했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계산한 값과 관측 값이 정확하게 맞았다. 중력파를 간접적으로 증명한 것으로 인정
받아 이들은 199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