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암컷과 수컷이 등장한 것은 불과 14억 년 전의 일이다. 그 전에 모든 생명체들은 스스로 둘로 쪼개지는 무성생식을 통해 개체 수를 늘렸다. 이 방법에 따르면 ‘어미’와 ‘자손’이라는 구분은 의미 없다. 오히려 쌍둥이라고 봐야 옳다. 무성생식은 간편하지만 위험하다. 똑같은 DNA를 가진 쌍둥이들은 기후를 비롯한 자연환경이 바뀌거나 새로운 질병이 퍼지면 집단 전체가 멸종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남녀가 유별한 유성생식은 유전자가 다양해져서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유리하지만, 아주 귀찮고 비용이 많이 드는 짝짓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그 대가로 짝짓기 과정에서는 솔로부대가 커플들을 부러워하기에 충분한 육체와 정신의 즐거움이 발생한다. 그리고 덕분에 우리는 아비를 아비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있다.
유성 생식은 괴롭다
생명이 번식의 방법으로 멀쩡한 무성생식을 놓아두고 굳이 유성생식을 선택하는 순간, 고생 문은 열렸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짝을 찾아 헤매야 하고, 짝을 만나면 최대한 섹시해 보이도록 치장을 해야 했고, 때때로 선물도 해야 했다. 커다란 꽃과 진한 향기를 자랑하는 글라디올러스도 작은 꽃가루에서 시작되지만, 그 탄생의 여정을 위해 곤충에게 훨씬 많은 꿀을 선사해야 한다. [사진_ Shirley Owens]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암컷과 수컷을 나누는 기준은 생식세포, 즉 배우자의 크기다. 배우자가 작으면 수컷이고 크면 암컷이다. 정자는 덩치 대신 이동성을 선택했고, 난자는 이동성 대신 크기를 선택하여 영양분을 가졌다. 정자가 난자를 찾아가 수정하는 순간부터 새 생명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시작된다. 갑자기 세포가 분열하여 여러 개가 되는 것이다. 사진은 송사리 과(科)에 속하는 킬리피시(killifish)의 갓 수정된 배아들이다.
[사진_ Rachel Fink]
수초에 달라붙은 송사리 배아
어항 가게에서 파는 수초인 자바모스에 배아 발생이 시작된 송사리(Oryzias latipes) 알이 달려있다. 이 알 가운데 몇 개나 송사리로 태어나고 그 가운데 몇 마리나 후손을 남길까? 그 확률은 매우 적다. 그래서 생명은 엄청나게 많은 알을 낳는 방법을 택했다. 송사리는 불과 수십 개의 알만 낳지만 대부분의 물고기는 수만 개의 알을 낳는다. 아! 이 엄청난 낭비라니… 대체 생명은 왜 유성생식을 택했을까? 답은 자연선택 때문이다. [사진_ Alex Griman]
기억은 언제 시작할까?
제브라피시는 의학연구에 많이 이용되는 물고기다. 인간과 유전자가 90퍼센트나 같기 때문이다. 사진은 발생 후 3일 된 제브라피시의 뇌를 찍은 것이다. 기억은 뇌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제브라피시는 이때를 기억할까? 설마! [사진_ Michael Hendricks]
누가 오징어 다리를 먹었을까?
오징어 다리는 10개다. 이 가운데 긴 것 두 개는 촉수(觸手)라고 한다. 촉수는 사냥을 하거나 짝짓기를 할 때 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잡은 먹이를 먹을 때 사용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것들은 다리일까, 손일까? 사진은 발생 후 5일 된 오징어(Loligo pealei)의 배아다. 아직 쓸 일이 없어서인지, 팔인지 다리인지 헷갈리는 그것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사진_ Rachel Fink]
마치 그 시절 우리 같은
갓 태어난 아기를 보고 가족들은 너무 예쁘다고 한다. 하지만 탄생의 고난 길을 지나온 갓난 아기가 마냥 예쁘기만 할 수가 있겠는가? 사실 출산 직후의 아기들은 좀 이상하게 생긴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뱃속의 배아는 언제 보아도 예쁘다. 이제 막 생겨난 눈과 갈라지기 시작한 손가락, 둥근 머리와 휜 등이 귀엽다. 우리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사진은 발생한지 13.5일 된 생쥐의 배아다. 이 사진을 보니 생물학자 헤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헤켈은 한 생명이 수정란에서부터 발생되는 과정은 태고 적 부터의 조상의 진화를 되풀이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주장을 발생반복설(진화재연설)이라 한다. [사진_ Arnaud Mailleux]
병아리가 되는 것은 흰자 아니면 노른자?
흰자와 노른자, 어느 것이 병아리가 될까? 많은 사람들은 병아리가 노랗다는 이유로 노른자를 선택한다. 그러면 까만 오골계는? 병아리가 되는 것은 배아이고, 흰자와 노른자는 배아가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분이다. 냉장고의 달걀을 깨보아도 거기서는 배아를 찾을 수 없다. 모두 씨 없는 수박이니까. 이 모든 수고는 생명이 유성생식을 택한 결과다! 그러나 그 덕분에 우리가 있다. 사진은 병아리의 태아다. [사진_ Tomas Pais de Azeve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