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소의 기원은- 우리의 기원입니다.
수소와 헬륨은 빅뱅에서

우주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수소와 헬륨이 빅뱅의 과정에서 생성되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낸 사람은
조지 가모(George Anthony Gamow, 1904~1968)와 랄프 알퍼(Ralph Asher Alper, 1921~2007)였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 관측을 통해 밝혀지자 가모와 그의 제자였던 알퍼는 우주의 팽창과정을
거꾸로 돌려가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는 연구를 시작했다. 우주가 작아질수록 온도와 밀도가
올라가서 결국에는 모든 원자들이 그 구성 입자인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분리되어 있는 상태에 도달하
게 된다. 아주 높은 온도에서는 입자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너무 커서 입자들을 묶어 원자핵을
형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빅뱅의 상상도. 수소와 헬륨은 빅뱅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주가 팽창하면서 온도가 내려가자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결합하여 헬륨 원자핵과 소량의 리튬과
붕소(보론) 원자핵을 만들었다. 그러나 우주의 온도가 일정한 온도 이하로 내려가자 더 이상의 원자핵이
만들어질 수 없었다. 원자핵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에너지가 너무 작아져서 전기적인 반발력을 이기고
강한 상호작용으로 원자핵을 구성할 수 있는 거리만큼 가까이 다가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빅뱅에 의한 원소의 제조는 여기에서 끝나게 되었다. 가모와 알퍼는 이러한 내용을 1948년 4월1일에
[화학원소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발표했다. 이 논문이 빅뱅 우주론을 처음으로 제시한
논문이었다. 가모와 알퍼는 이 논문에서 우주에 존재하는 수소 원자와 헬륨 원자 수의 비가 약 10:1
이라는 것을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철까지의 원소는 별의 핵융합에서

그러나 우주에는 수소와 헬륨 외에도 많은 원소들이 존재하고 있다.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빅뱅의
과정에서 만들어질 수 없었다면 이들은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일까? 태양을 비롯한 대부분의 별이 주로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과학자들 중에는 별이 내는 에너지가
수소가 헬륨으로 변환하는 핵융합에 의해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프리츠
후터만스(Fritz Houtermans, 1903~1966)와 로버트 애트킨슨(Robert d'Escourt Atkinson)은 1929년에 별의
내부는 온도가 매우 높아 양성자들이 강한 상호작용으로 결합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갈 수 있어 수소
의 핵융합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중성자가 발견되기 이전이어서 중성자
의 존재를 몰랐던 그들은 정확한 계산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는 없었다. | |
후터만과 애트킨슨에 이어 별 내부에서의 핵융합 과정을 밝혀낸 사람은 한스 베테(Hans Albrecht Bethe, 1906~2005)였다. 베테는 1938년에 수소가 헬륨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별 내부에서 일어나는 수소 핵융합 반응의 자세한 과정에 대해서는 2009년 7월 24일자 오늘의 과학, 별의 물리학 핵융합 참조). 태양과 같은 별은 수소 핵융합을 통해 헬륨 원자핵을 만들어내면서 그 때 발생하는 에너지로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후터만스, 애트킨슨, 베테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별 내부에서 가벼운 수소가 헬륨 원자핵으로 변환하는 과정은 설명이 되었다. 그러나 헬륨보다 더 무거운 원소가 합성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헬륨 원자핵은 네 개의 핵자(양성자와 중성자)를 가지고 있다. 헬륨 원자핵이 양성자를 흡수하면 다섯 개의 핵자를 가진 원자핵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원자핵은 불안정해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헬륨 원자핵 두 개가 결합하면 여덟 개의 핵자를 가지는 원자핵이 만들어지는데 이런 원자핵도 매우 불안정하다. 불안정한 원자핵들이 헬륨보다 더 무거운 원자핵으로 가는 통로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 |
|

헬륨에서 철까지의 원소는 별의 핵융합으로
만들어졌다. <출처: NASA> | |
이 문제를 해결하여 별의 내부에서 무거운 원소들이 합성되는 과정을 밝혀내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은 정상 우주론을 제안했던 프레드 호일(Fred Hoyle, 1915~2001)이었다. 호일은 헬륨 원자핵
두 개가 결합하여 불안정한 상태의 베릴륨 원자핵을 만들고, 여기에 다시 헬륨 원자핵이 결합하여
들뜬 상태의 탄소 원자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예측했고, 그의 예측은 윌리엄 파울러
(William Fowler, 1911~1995)의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핵융합을 통해 탄소 원자핵이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하게 되자 탄소보다 큰 원자핵의 합성은 비교적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호일과 파울러,
부부였던 마가렛 버비지(E. Margaret Burbidge, 1919~)와 제프리 버비지(Geoffrey R. Burbidge,
1925~2010)는 1957년에 [별의 원소 합성]이라는 제목의 104 페이지나 되는 긴 논문을 통해 무거운
원자핵이 합성되는 과정을 밝혔다.
별의 내부에서는 여러 단계의 핵융합 반응을 통해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진다. 더
무거운 원자핵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별의 내부 온도와 밀도가 더 높아야 한다. 질량이 큰
별에서는 중력에 의한 응축에 의해 핵융합에 필요한 상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별 내부에서의
핵융합 반응으로는 철의 원자핵보다 더 무거운 원자핵을 만들 수 없다.
철보다 무거운 원소는 초신성 폭발에서 | |

초신성 폭발의 잔해인 게성운. 철보다 무거운 원소는 초신성 폭발로 생겼다. <출처: NASA> | |
|
원자핵이 핵융합을 통해 더 큰 원자핵이 되는 것은
더 커질수록 에너지가 낮은 상태 즉 더 안정한 상태
의 원자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자핵이 커짐
에 따라 더 안정한 에너지 상태가 되는 것은 원자번
호가 26인 철의 원자핵까지뿐이다. 철 원자핵보다
커지면 오히려 에너지 상태가 높은 원자핵이 된다.
철 원자핵보다 큰 원자핵들은 핵분열을 통해 더
안정한 원자핵이 되려고 한다. 따라서 에너지를
생산해 내는 정상적인 핵융합 과정을 통해서는
철의 원자핵보다 더 무거운 원자핵이 만들어질
수 없다. 그렇다면 우주에 존재하는 철보다 무거운
원자핵들은 어디에서 만들어졌을까?
우주에는 철보다 더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원자핵 합성 과정이 남아있다. 그것은
초신성 폭발이다. 별을 구성하는 모든 양성자가
붕괴하여 중성자가 만들어지는 초신성 폭발 시에
는 별이 일생동안 핵융합을 통해 방출한 것보다도
훨씬 많은 에너지가 아주 짧은 순간에 방출된다.
이 넘쳐나는 에너지가 순식간에 무거운 원소를
제조해내는 것이다. 초신성 폭발은 큰 에너지로
무거운 원소를 제조할 뿐만 아니라 별의 일생을
통해 만들어낸 무거운 원소들을 우주 공간에
흩어놓아 우주가 화학적으로 풍요로운 공간이
되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 |
원소의 기원

20세기 과학자들은 원소의 기원에 대해 이만큼 밝혀냈다. 물론 이러한 과학적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학에서는 한 이론이나 주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
적인 방법으로 기존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을 칭찬한다. 과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
었던 것은 스승의 주장이나 이론을 반대하고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것을 권장해 왔기 때문이다. 원소
의 기원에 관한 이론은 앞으로 더욱 발전하고 변해갈 것이다. 그러나 불과 10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에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의 기원에 대해 이만큼 많은 것을 밝혀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
글 곽영직 / 수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수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쓴 책으로는 [과학이야기] [자연과학의 역사] [원자보다 작은 세계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