Ⅵ.생명체출현과 인간의출현/5.센트럴 도그마(분자생물학)

센트럴 도그마(분자생물학)

블핵홀 2011. 7. 4. 11:51

 

센트럴 도그마

1940년대 미국 록펠러대 오즈월드 에이버리(오스왈드 에버리, Oswald Avery, 1877~1955)가 독성이 있는 폐렴균의 DNA가 독성이 없는 폐렴균으로 전달되자 독성이 없던 폐렴균에 갑자기 독성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유력한 증거가 드러난 것이다. 그 뒤 1953년 제임스 왓슨(James Watson, 1928~)과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1916~2004)이 DNA의 나선형 구조를 밝히면서 DNA 연구는 급물살을 탔다.

 

과학자의 다음 과제는 DNA가 담고 있는 유전 정보가 생체 내에서 어떻게 전달되는지 분자 수준에서 밝히는 것이었다. 1958년 크릭은 ‘센트럴 도그마(central dogma)’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문자대로 해석하면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라는 뜻이다. 센트럴 도그마 가설에 따르면 DNA의 유전정보는 RNA를 거쳐 단백질로 전달되며, 그 반대 방향으로는 전달되지 않는다.

 

DNA가 담고 있는 유전 정보는 생체 내에서 어떻게 전달될까?

 

 

 

복제 : DNA에서 DNA로


센트럴 도그마의 첫 번째 단계는 DNA에서 DNA로 정보가 전달되는 ‘복제(replication)’다. DNA는 이중나선 구조로, 자기 스스로를 똑같이 복제한다. 인간은 단 한 개의 세포(수정란)에서 무수히 분열해 수조개의 세포를 가진 생명체가 되는데, DNA 복제 덕분에 모든 세포는 100% 똑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

 

 

DNA 복제 원리는 ‘고장 난 지퍼’를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장 나서 가운데가 벌어진 지퍼의 양쪽 가닥에 지퍼 조각이 차례로 끼어들어가 결국 2개의 지퍼를 만드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효소는 DNA 중합효소로, 1956년 미국의 아서 콘버그(Arthur Kornberg, 1918~)가 대장균에서 발견했다. 그는 DNA 중합효소로 인공 DNA를 합성해 효소의 기능을 입증했다. 

 

DNA 중합효소를 발견한 공로로 아서 콘버그는 RNA 중합효소를 발견한 세베로 오초아(Severo Ochoa, 1905~1993)와 함께 195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덧붙여 콘버그는 오초아의 제자였다.


DNA는 염기가 서로 상보적으로 결합된 이중나선 구조다. 두 가닥이 풀린 뒤 반대편에 새로운 가닥이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똑같은 DNA가 복제된다.

 

DNA 복제에는 DNA 중합효소 외에도 수십 개의 단백질이 관여한다. 이중나선을 풀어주는 효소, 풀어준 단일 가닥의 DNA를 붙잡아 주는 단백질, DNA의 빈 곳을 메꿔 주는 효소, 오류를 정정하는 효소 등 다양한 단백질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DNA가 오류 없이 복제되도록 한다. 

 

 

전사 : DNA에서 RNA로


두 번째 단계는 DNA에서 RNA로 정보가 전달되는 ‘전사(transcription)’다. RNA는 DNA와 비슷한 구조의 핵산이다. DNA가 데옥시리보오스를 뼈대로 사용하는 대신 RNA는 리보오스를 사용하고, DNA가 티민(T)을 염기로 사용하는 대신 RNA는 우라실(U)을 사용하는 것이 다르다.

 

 

생물학계의 대부 프랜시스 크릭. DNA 구조를 밝힌 뒤 센트럴 도그마 가설을 제안해 분자생물학 연구에 불을 붙였다. <출처: (CC) PLoS>


RNA는 기능에 따라 3가지로 나누는데, 이중 전사에 관여하는 RNA를 mRNA(messenger RNA)라고 부른다. 전사를 간단히 설명하면 ‘DNA 중 필요한 일부 정보를 mRNA에 베끼는 것’이다. 이렇게 DNA 정보를 베낀 mRNA는 세포핵 밖으로 빠져나와 단백질을 만들 준비를 하게 된다. 도서관으로 비유하자면 DNA는 대출되지 않는 책이며, mRNA는 이 책에서 필요한 페이지 일부를 복사한 복사본이다. 
 

왜 DNA를 그대로 쓰지 않고, mRNA에 복사해 사용할까?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는 매우 긴 분자이며, 똘똘 뭉쳐있어 그대로 쓰기 불편하다. 또 DNA는 훼손돼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정보이므로 핵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mRNA에 복사해서 내보내는 것이다.


전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RNA 중합효소는 앞서 언급한 대로 세베로 오초아가 발견했다. 그러나 전사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명확히 규명한 사람은 아서 콘버그의 아들인 로저 콘버그(Roger Kornberg, 1947~)다.

 

 

RNA 중합효소가 DNA의 특정 부위에 붙으면 DNA 두 가닥이 벌어지고 사슬이 풀린다. RNA 중합효소가 이동하면서 DNA의 염기서열에 상보적으로 염기를 붙이며 mRNA를 만든다. 이때 아데닌(A)에 상보적인 염기는 티민(T) 대신 우라실(U)이 된다. 로저 콘버그는 이 공로로 200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해 ‘부자(父子) 노벨상 수상’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번역 : RNA에서 단백질로 

핵 속에서 만들어진 mRNA는 핵 밖으로 빠져나와 세포내 소기관인 리보솜으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mRNA의 정보에 따라 아미노산이 순서대로 결합해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센트럴 도그마의 세 번째 단계, ‘번역(translation)’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염기가 4종류뿐인 DNA 혹은 RNA가 어떻게 20종의 아미노산의 정보를 지정할 수 있느냐이다. 사실 이런 이유로 과거 과학자들은 DNA보다 단백질이 유전물질의 후보로 생각했었다.

 

1966년 미국의 로버트 홀리(Robert Holley, 1922~1993)와 마셜 니런버그(Marshall Nirenberg, 1927~), 고빈드 코라나(Gobind Khorana, 1922~)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 DNA로부터 전달된 RNA의 유전정보는 염기 3개가 하나의 특정 아미노산을 지정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염기서열을 바꿔가며 DNA의 정보가 아미노산에 어떻게 대응되는지 일일이 밝혀냈다. 이들은 이 공로로 196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인 리보솜. 리보솜은 rRNA가 포함된 매우 복잡한 구조다.
<출처: (CC) Yikazuul at Wikipedia.org>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인 리보솜은 단백질과 RNA가 결합한 거대한 복합체다. 리보솜의 구성요소인 RNA를 rRNA(ribosomal RNA)라고 부른다. 이곳으로 tRNA(tranfer RNA)가 아미노산 분자를 하나씩 가져오면 리보솜이 이들을 순서대로 결합시켜 단백질을 만든다. tRNA마다 가지고 오는 아미노산이 정해져 있다.

 

리보솜의 3차원 구조와 정확한 작동원리는 2000년이 넘어서야 밝혀졌다. 영국의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Venkatraman Ramakrishnan, 1952~), 미국의 토머스 스타이츠(Thomas Steitz, 1940~), 이스라엘의 아다 요나트(Ada Yonath, 1939~)는 이 공로로 200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센트럴 도그마 가설.

 

 

센트럴 도그마를 반박하는 예


하지만 생명체의 정보가 센트럴 도그마의 설명처럼 DNA, RNA, 단백질 순서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1975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기존 센트럴 도그마에 정면으로 반박한 연구에 돌아갔다. 미국의 데이비드 볼티모어(David Baltimore, 1938~), 레나토 둘베코(Renato Dulbecco, 1914~), 하워드 테민(Howard Temin, 1934~)은 RNA에서 DNA를 만드는 RNA복제효소를 발견했다. 레트로 바이러스는 RNA를 유전물질로 갖는데, RNA에서 DNA를 합성한 뒤 숙주의 DNA에 끼어 들어간다. 또 RNA에서 RNA로, DNA에서 단백질로 직접 정보가 전달되는 사례도 드러나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최근 광우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프리온 단백질도 기존 센트럴 도그마를 반박하는 예다. 변형된 프리온은 정상 단백질과 결합해 변형시키는 성질을 갖고 있다. 즉 센트럴 도그마의 설명대로 DNA, RNA, 단백질로 정보가 흐르는 대신, 단백질에서 단백질로 정보가 흐른 특별한 예인 것이다.

 

센트럴 도그마에 속하지 않은 특별한 사례들이 밝혀지고 있지만 분자생물학에서 센트럴 도그마의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센트럴 도그마가 밝혀진 덕분에 그동안 인간이 개입할 수 없었던 생명체의 생명 현상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생명체의 생명활동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야를 제공해 주고 있다.

 

 

 

엄수현 / 광주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 교수